김정자(시인·수필가)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을 둔 젊은 엄마인데 탈선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긴급 기도 요청을 받았다. 남자 아이라 평소에 아빠랑 대화를 나누도록 권면해왔던 터였지만 번번히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아빠랑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아들방에 밀다시피 들여다 보내면 둘 다 컴퓨터와의 대화에만 몰두할 뿐 별다른 대화없이 아들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나와버린다며 안타까워하기에 아이와 만나보기로 했다.
공원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아이의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부모님은 불량한 학생과 어울리는 것을 몹씨 꺼리시지만 자기 입장에서는 그 아이가 외롭고 힘들어 보여서 자기라도 친구가 되어 더 이상 탈선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는데 부모님은 그 아이와 가까이하지 말기를 당부하기도 하고 강요받기도 하는 탓에 반감으로라도 그 친구의 아픔과 외로움을 감싸주며 고충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는 꾸밈 없는 아이의 마음가짐이 의외로 순정하고 아름다웠다. 어른들의 찌든 마음을 씻어줄 만큼.
힘든 친구에게 꼭 너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사람이 너 밖에 없다면, 꼭 너라야만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조언을 해주며 한동안 기도로 도우기로 했다. 아빠와 자녀와의 대화법에 대한 책을 건내드리며 아빠와 아이의 동행 여행을 시도해보라고 여행지 추천까지 도와드렸다. 얼마 후 학교 생활에도 충실하게 되었고 방황의 시기를 벗어 난 것 같다며 아이 엄마의 표정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친구에 대한 사명감 같은 우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어린 아들에 비해 그쪽 부모는 자녀가 집에 들어왔는지, 학교 생활이며 학업에 소홀하지는 않는지 내 아이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는지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고 자식 공부 시키고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는데 새끼들은 생각없이 산다고 불평을 하는 부모였다고 한다. 이미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나 다를바 없다시며 측은지심 고통스러워하셨다. 삶에 지쳐 있더라도 아이 앞날을 염두에 두고는 있는 것인지. 사춘기에 머물러있는 정체성조차도 확립되지 않은 미성숙한 아이를 친구 우정만으로는 감당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라며 눈물까지 보이셨다. 2세들이 이 거대하고 다양한 미국 땅에서 어떻게 앞날을 살아갈까.
자녀를 위해 혼신을 쏟아붓는 제설기 같은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가는 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부모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성 성격장애나 분리 불안장애를 조장해온 헬리콥터 부모상도 있다. 어김없이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한다며 고압적인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부모, 아이들의 감정 따위에는 둔감하기도 하거니와 아예 무관심한 부모도 있거니와 부부 갈등이나 고단함을 어린 자식에게 하소연하는 부모도 있다. 이 모두가 생각짧은 어른들이 심약한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대표적인 정신적 폭력의 양상이다.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지극한 편견이다. 부모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뇌하며 세상 흐름에 무엇이 옳고 그름에까지 알고 느끼며 선택할 줄도 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위압적인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적인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관계라는 것이다.
모 잡지에 게재된 글을 읽었다. 이민1세 부모님들이 자녀를 잘 키워서 국회의원 어머니도 되고, 사장 부모도 되고, 의사, 예술가의 부모도 되자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좋은 발상인 것 같지만 어떤 지위나 직급을 염두에 두고 양육하려는 것보다 올바른 전 인격 형성에 집중하며 세상을 향한 헌신의 마음도 심어주며 이 땅의 주인의식을 갖도록 정체성을 심어주는 바람직한 청사진을 함께 그려가야 할 것이다.
우리 2세들이 미 주류사회를 향한 처절한 도전을 필사적으로 감행하고 있음도 기억해두어야할 것이다. 거센 물결과 마주하며 역주행하는 연어처럼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격려로 고무하며 용기를 북돋우워 주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부모의 관심과 눈높이가 조절된 사랑의 대화이다. 돈벌어주는 기계로 충분한 희생을 했다고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파란 눈의 아이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2세들을 아린 가슴은 누가 껴안아줄 것인가.
방황하는 아이들이라 내몰지 말아서 부모님 사랑으로 자신감이 세워지고 당당해지고 이 땅에 먼저 살고 있는 아이들과 의연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파워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인정받고 싶은 열망을 열린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등대 같은 부모의 길을 걷는 것은 마치 정결하게 잘 닦여진 안경을 씌워주는 것으로 진실과 사랑과 평화가 투영되는 안목을 열어주는 것이다. 등대 같은 부모의 길은 언제까지 이어져도 좋을 위대한 길이다. 한국인의 우수성과 모범적인 이민 이미지를 지켜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