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숙(꽃길 걷는 여인/쥬위시타워 보석줍기 회원)
금요일 오후, 우리 부부는 어김없이 아들네로 가서 손주들과 주말을 보낸다. 맛난 음식도 해 주고 아이들과 텃밭도 가꾸는데, 어느날 9살짜리 손주 드온이가 밥을 먹다가 “할머니, 나 할머니가 해준 오이 그런 거 먹고 싶어요”한다. “그런 거가 뭔데?” “있잖아요, 오이하고 고추가루하고 그런 거요.” “할머니가 뭔지 모르겠네.” 드온이는 답답했는지 한국 동화책들을 뒤져 오이 소박이 그림을 보여준다. “아! 오이소박이?” “네, 그것 먹고 싶어요.” 난 그 순간 기뻤다. “그래? 우리 드온이가 먹고 싶다니 당장 해줘야지.”
사실 손주 드온이하고는 끈끈한 정이 없었다. 첫째 사랑이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게 금지 옥엽으로 키웠는데, 둘째 드온이는 내 손으로 키우지 않아서인지 날 보면 늘 저는 외할머니가 좋다며 뒤로 물러서곤 해서 은근히 나를 섭섭하게 한 녀석이다. 그냥 서먹서먹한 할머니와 손주 사이, 그러면서도 조금씩 서로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사이… 이 참에 점수를 따야지 하며 내심 기뻤다. “얼른 장 봐다가 만들어 줄게.” 들뜬 드온이 목소리가 커진다.
“네에, 난 그것 좋아해요.” “우리 드온이 오이 소박이 먹고 싶을 때마다 할머니가 해줄게” 하곤 뿌듯한 마음으로 오이를 잔뜩 사가지고 씻어 절이고, 농사지은 부추 도려다가 다듬기 시작했다. 신이 났다. 누구보다 손주 드온이가 먹고 싶다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콧노래 흥얼거리며 고추가루, 새우젓, 파, 마늘 넣어 양념 속을 버무린다. 절여놓은 오이는 씻어 십자로 칼집을 넣고 버무려 놓은 소를 가득 채워 차곡차곡 사랑과 행복을 눌러가며 담는다. 우리 드온이가 오이소박이 먹을 때마다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겠지 상상하며 오이 소박이를 담그는 하루가 많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