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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오징어 게임’이 주는 메시지들

미국뉴스 | 외부 칼럼 | 2021-10-08 08:40:51

권정희 논설위원,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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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지난 주말 웨스트 LA의 어느 집 뒷마당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다. 격식 없이 편안하게 어울리는 자리였다. 집주인이 오랜 친구라며 50대 백인여성을 소개하기에 인사를 하며 이름을 말했더니 그가 반색을 했다. “정희? 코리안이로구나!” - 반짝이는 눈동자에 반가움이 가득했다.

 

대학에서 사진학을 가르치는 그는 지난 1년 반 팬데믹이 몰고 온 답답함을 코리안 드라마 보는 재미로 버텼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를 하도 봐서 이제는 맥주에 소주를 섞지 않으면 싱거워서 마실 수가 없다며 하하 웃었다. 대화는 여러 드라마를 거쳐 ‘오징어 게임’에 이르고, 장장 9편의 시리즈를 그는 이틀 만에 다 봤다고 했다. 에피소드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멈출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요즘 어느 모임에서든 빠지지 않는 화제가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다. “너무 폭력적이다”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죽어나가는 선혈 낭자한 이 드라마의 인기가 실로 폭발적이다. 지난달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이 드라마는 방영된 80여개국에서 최다 시청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해시태그(#SquidGame) 조회가 228억 번을 넘어섰다. 드라마 속 의상이며 게임들은 소셜 미디어에 패러디로 이어지고, 파리에는 드라마 체험관도 등장했다.

 

넷플릭스 프랑스가 지난 3일 마련한 ‘오징어 게임’ 체험관에는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관람객들이 몇 시간씩 줄서서 기다린 후 ‘체험’한 것은 드라마 소품들 구경 그리고 달고나 뽑기와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 문학 음악 패션 할 것 없이 프랑스 것이라면 문화의 최정상이라며 떠받들어 모셨던 것이 과거의 한국인데, 한국의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하던 놀이를 해보겠다고 프랑스인들이 몰려들다니, 격세지감이 든다.

 

‘오징어 게임’은 공개 불과 두어주 만에 인기드라마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도 ‘세계적 문화현상’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이 일으킨 세계적 돌풍의 바통을 올해 드라마 ‘오징어’가 이어받았다. 미국에서는 지난 4일 방탄소년단(BTS)의 신곡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고, ‘오징어 게임’이 미국 넷플릭스 전체 순위 1위를 고수했다. 세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활약이 눈부시다.

 

‘오징어 게임’은 빚에 몰려 더 이상 갈 곳 없는 인생 낙오자 456명이 처절한 죽음의 게임을 하는 내용이다. 1인당 게임 상금은 1억원, 게임에서 패하면 목숨을 잃고, 죽은 자들의 몫은 적립된다. 많이 죽어나갈수록 남은 자들의 상금이 불어나는 구도이다. 최종승자의 상금 456억원을 바라보며 참가자들은 죽을힘을 다하고, 그러다 죽고, 게임현장으로부터 뚝 떨어진 높은 곳에서는 다른 자들이 샴페인을 마시며, 낄낄낄 이들의 게임을 구경한다. 돈이 너무 많아 인생이 지루한 자들,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필요한 자들이다.

 

한쪽에서는 돈이 너무 없어 파리처럼 죽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하는 경제적 양극화, 부의 불평등, 그로 인해 천 길 낭떠러지만큼이나 아득하게 벌어진 가진 계층과 못 가진 계층의 거리, 그리고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향한 처참하도록 극한 경쟁 구도 … 자본주의가 깊어진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드라마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피나는 모순을 맛깔스런 장치들을 동원해 확대하고 극화해서 깔끔한 풍유로 내어놓았고, 이 나라와 저 나라의 사정이 다르지 않은 글로벌시대에 세계인들은 격렬한 공감의 신호들을 보내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또 보고, 달고나를 만들어 뽑기를 하고, 극중 경비원복장을 이번 할로윈 의상으로 줄줄이 예매하고, 시즌 2가 언제 어떤 내용으로 나올지 예측이 분분하고 … 세계는 ‘오징어’ 열기로 한동안 뜨거울 전망이다.

 

드라마로서 ‘오징어’가 주는 메시지가 신랄한 사회비판이라면 폭발적 인기가 주는 메시지는 ‘문화가 힘’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가가, 외교관이 못 해내는 일을 문화는 할 수가 있다. 정부당국이 예산 들여 기획한다고 해서 딱지치기 하러, 달고나 뽑기 하러 파리시민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

 

문화의 힘은 마음을 열고, 마음을 사로잡아 감동시키는 것. 감동은 행동을 하게 한다. BTS 아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세계 각국의 K 드라마 팬들에게 ‘오빠’ ‘사랑해’ 정도는 일상용어가 된 지 오래다. 최근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영어사전을 개정하면서 K-드라마, 한류, 먹방, 만화, 동치미, 갈비, 누나, 오빠, 언니 등 26개 단어를 추가한 것은 한국 대중문화가 갖는 세계적 영향력의 반증이다.

 

20세기가 정치 이데올로기와 굴뚝산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정보와 문화의 시대이다.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문화의 기본은 하이브리드.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면서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것,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융합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기생충’이 그랬고, ‘오징어’가 그랬다.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90년대부터 똑똑한 젊은이들이 영화 분야로 계속 진출한 결과이다. 이제는 인재들이 정치 쪽으로 좀 가야 할 것인지, 정치에서 한국은 여전히 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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