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햇수로 3년이다. 온전히 이태 동안을 발목잡히듯 멈춰버린 시간 사이로 모든 평범이 정지신호를 받은 것처럼 보류되고 차단되어 버렸다. 뉴스 속에서의 현재는 격리와 감염자, 사망자, 백신 추이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치 열대성 태풍처럼 진로가 오리무중이다. 모든 지경이 막히고, 못하게 되고, 그만 두어야 하고, 멈춤이란 덫에 걸려버렸다. 걷잡을 수 없는 팬데믹 사태로 모든 일상은 시간을 담보당한 채 몇날이 몇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종잡을 수 없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일상은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부주의나 기억력 부족이 아닌 팬데믹 혼란으로 시속을 잃어버리고 되돌릴 수 없는, 마냥 모른척 지나쳐버릴 수도 없는 하루들이 그렇게 맴돌고 있다. 벽에 걸린 달력도, 탁상 위 달력도 얼떨결에 한 장씩 넘겨지고 마스크와 작별할 시간만을 기다리는 무력한 하루들이 지쳐있다. 팬데믹 이전 그 날들을 최정점 유려한 가치의 한계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그 날들을 지향하듯 그리움에 젖어들고 있는 것 조차에도 왜일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백신 접종이 고무적으로 진행되면서 정지된 일상은 미세한 흐름이지만 평범으로 조심스레 다가서려는 의도와는 달리 지구 도처에선 팬데믹에서 완전한 놓임을 받은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 듯 코로나 위드라는 거대한 함성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것인지, 삶의 됨됨이가 퇴화되고 있는 것인지. 정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번거로움에 나몰라라 하는 제스츄어인지. 갈래길에 선 것 마냥 생각이 많아진다. 격리만 잘하면 좋은 날이 오겠거니 했었는데 정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멈춰있던 시간 사이로 가려진 시간의 벽 두께가 얼마나 두터웠으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감각 조차 무디어졌을까.
마치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시가지가 강줄기로 변하듯 어리석음이 침전된 흙탕물에 잠겨들고 있는 모양새다. 델타, 뮤 변이의 산발적인 발생, 독감이 겹친 트윈데믹으로 다시금 일상이 격리될 것 같은 일시정지 위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끝모를 재난까지 호시탐탐 위풍당당 들어서고 있다. 팬데믹 위기가 반복되려는 것일까. 위기 중에도 우리 인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세세히 살피며 위기를 대처해 왔던 것 같은데 지구는 지금 내우외환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금세기 위기는 팬데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서 순간 모면으로 벗어나는 것도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유엔이 발간한 ‘식량 안보 및 영양 보고서’에 세 명 중 한 명은 식량부족, 열 명 중 한 명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가 앓기 시작하면서 무서운 재앙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천재지변이란 말로 축소하기엔 실로 방대한 재난이다. 미 서부는 혹서와 가뭄, 대형 산불이 몇 달 째 계속 이어지고 저수지도 매말라버렸다. 바닷물 수온 상승으로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생존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인간의 잔혹한 광기로 인한 위기감 고조는 처음 겪는 두려움이 아니라해서 강 건너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다.
제아무리 초강력 바이러스라 한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려니 하는 희망의 실마리가 거미줄은 아닌것일까. 공포와 불신은 인간질서를 위협하고 종국에는 정치적으로도 두 줄로 나누려 든다.
진실과 정의, 화해와 평화, 사랑과 화평이 우선되어져야 하는 것인데 탐욕과 위선, 분열과 음모, 과시와 불평불만으로 생각과 현실을 본질로부터 벗어나도록 부채질하고 가치관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를 서로 네 탓으로 손가락질 하기에 여념이 없고, 서로가 거짓이라고, 서로를 밀어내며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결속력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위기가 고조되고 그 위기를 무기 삼는 무리들이 편가르기에 여념 없지만 변화와 도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다가올 변화가 더 크고 깊은 위기로 끌고 갈지 아니면 새로운 도전과 공생의 기회로 삼게 될 지 갈림길 위에 인류를 세워 놓았지만 감사할 것은 변화라는 파도와 아름다운 도전의 물결이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위기 극복의 전조등은 이미 준비완료를 알리고 있다는 기대감 만으로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 평안의 기운이 감돈다. 재난 가운데서도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며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라는 신호탄으로 삼는다면 멈춰버린 시간 사이로 밝은 햇살이 깃들 것이다. 속도감 보다 목표를 향한 시선 고정에 고심해간다면 이 기회 또한 인류 스스로 도전의 물꼬를 틔워가고 있음이라서 위기극복이라는 태양 같은 희망이 오로라처럼 번져날 것이다. 금세기 위기로부터 과연 무엇이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인류가 함께 풀어 가야 할 성스럽고 거룩한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