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텃밭엔 오이랑호박을 심어 놓고
들장미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시인 노천명]
청새알같은 하늘빛이 고운 가실 추석을 맞아 함지박보다 큰 달이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밤, 시인 노천명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이 돌산 옆에 묻혀 사는 즐거움, 여왕보다 행복하다. 창밖엔 백 년 된 노송들이 푸른 하늘을 이고, 흰구름 흐르는 갈하늘 하나만으로도 지극한 행복 아니랴- 창 너머 뒤뜰에 푸른 초원이 저녁 놀에 물들면 윌리엄 워즈워드 ‘초원의 빛이여’ 학창 시절의 꿈 많은 소녀 시절로 돌아간다. 하늘에 무지개뜨면/내 가슴은 뛰노라/내 인생이 시작되었을 때 그랬고/지금 어른이 돼서도 그러하며/ 늙어서도 그리 하기를/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내 살아가는 나날이/자연에 대한 경외로 이어질 수 있다면(윌리엄 워즈 워드의 시)
시인은 아마 세상에서는 잊혀진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느끼며 사는 철없는 어린아이로 사는 부족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영원히 철이 안드는 아이처럼- 시 한 수에 마음을 빼앗긴 그 사람 ‘시인이란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바위같은 사람이다’. 우리 동네 애틀랜타는 지구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풍수지리학자들의 명인들의 동네라 온 미주에서 은퇴지로 꼽혔다. 그 시절 한인들이 500명이던 애틀랜타는 285가 2차선이었다. 가난한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나 살던 곳이었다. 행여! 어디서 한인들 누가 사는지 찾아보려 신문에 글을 실었다. 지금은 한인들이 많아서 만나면 눈길도 서로 주지 않는다. 미국 살면서 ‘무엇이 과연 미국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가?’는 아주 간단하다. 내 이웃을 만나면 ‘웃으라, 감사하라, 무엇을 도와줄 수 있나’ 생각하면 행복하다. 나는 45년을 초등학교 앞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위해 대문에 사철 꽃을 심고, 호박 철이면 마당에 호박을 굴리고, 미국의 기념일에는 미국 국기를 올리고 함께 웃고 울었다. 그 초등학교가 이사를 갔다. 새로 지은 그 교정에 우리 가족 이름이 새겨진 돌의자를 선물했다. ‘사랑 한다’는 말을 새겨 넣었다. 그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내가 깨어났고 무지개를 사랑하는 동심에서 살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이 아름다운 애틀랜타에서 살면서 한인들이 ‘사랑 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기를 바란다. 청새알같은 하늘 가을 잎새들이 색깔을 금테를 두른 듯 찬란한 꽃 수레를 두른 갈날 누군들 시인이 아니랴 -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헬렌 켈러’는, 시각, 청각을 다 잃어버린 그녀는 ‘ 내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글에서 “보지 못하는 나는 촉각만으로도 나무 잎새 하나 하나의 그 빛을 느낄 수가 있어--- 때로는 사흘만이라도 이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내게 친절, 우정으로 내 삶을 찾아 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일깨워준 그 수많은 책들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 숲속을 거닐며 찬란한 그 노을빛을-- 그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썼다. 우린 사흘이 아니라, 화사한 갈 햇살, 갈 잎새들의 빛나는 황금빛을 마음껏 볼 수 있지 않는가. 부엉이가 우는 밤에도 별들이 쏟아지는 마당에 나가 내 좋은 사람과 밤 늦도록 사슴들이 밤을 헤매는 이 산골 이야기를 나누며 ‘여왕보다 행복하고 싶다’ 이름 없는 시골 여인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