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마음과 체온이 실린 악수는 서로 손을 마주 잡아야 가능한 것이다. 반가움에 겨워 두 손을 움켜잡고 흔들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듬뿍실린 따뜻한 포옹을 나눈 지가 언제였던가. 반가운 분을 뵙게되면 인삿말보다 우선 손을 덥석잡고 포옹을 나누었었는데 확신할 수 없는 기약없는 기다림에 더는 설렘이 기웃대지도 않는다.
순간 순간 기다림의 미학이 떠오르고 기다림의 의지는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은유로하여 기다림의 메타포를 떠오르는대로 나열해 보았다.
기다림 양상은 실로 다양하다. 기다림을 불편해하거나 피해보려는 모습 또한 얼핏얼핏 보게된다. 기분좋은 선별된 기다림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착상이 황망스럽기도 하지만 빨리빨리문화에 충실한 나머지 탐욕이 저지른 인생역전을 노리는 허황된 기다림은 순간의 스릴에 현혹된 경계해야 할 기다림이다.
막막한 현실의 고난과 고뇌, 고달픔에서 벗어나려는 고단한 기다림도 인생들 곁에서 뭉기적거리고, 좌절과 슬픔이 엷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애절한 기다림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폭정에 시달린 백성들이 성군을 기다리는 기다림도 있어왔다. 건실하게 살아야 하는 진리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기다림도 있지만 오랜 무명생활의 고통을 견뎌내며 심상사성(心想事成)으로 절실한 간절함에 바탕을 두고 마음과 힘을 다해 키워낸 유익한 기다림들은 주위를 훈훈하게 해주기도 한다.
혹독한 시련을 넘어서려는 자아의 몸부림이 일궈낸 보석같은 귀한 생의 선물로 다가오기도 한다. 믿고 기다려준 가족과 지인들에겐 감동이 물결처럼 전해질 것이요 본인에겐 역경을 견뎌낸 승전고가 될 것이다. 시간과의 줄달음을 이겨낸 쾌거라 할 수 있겠거니와 주변 모든 사람들로 부터 부러움을 사게되고 본받을 만한 성공 사례로 남겨지기도 한다.
기다림은 삶의 마디마디에서 소중한 물꼬를 열어주며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도 동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다림이 신비한 위대성을 지닌 것은 상대적 기다림과도 친숙해지고 갈수록 조화를 꿈꾸게 되고 넉넉한 격을 만들어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토록 귀한 감성이 홀연히 어느 순간엔가 시들어버리면 어쩌나하는 기우가 맴돌기도 하는 것은 언제나 기다림은 목마름이었고, 까치발을 하다가 문득 어디메쯤 이르면 기다림이 힘을 잃게될 수도 있을 것이라서 노을이 스러질 때까지 기다림이 기다림을 불러오는 매직에 사로잡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해서 기다림은 인생의 숙명이요 기다림 없는 인생은 황량한 사막을 걷는 것는 것이라 했나보다.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우리네 삶이지만 믿을 수 있는 기다림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기약 없는 기다림과도 친숙해졌으면 바램해본다.
기다림의 용기와 인내가 오기를 추켜세워 주었기에 끊임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다림의 끝에서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기적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다시금 기다림에 매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은 차가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지만.
어차피 매서운 겨울 동안 봄을 기다림하면서 춥고 어두운 겨울나기를 해오지 않았던가.
이미 가을로 들어섰다. 유난히 맑은 푸름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엔 엷은 가을구름이 연연히 흐르고 있다. 팬데믹 와중에 무더위, 가뭄, 홍수와 산불, 하리케인에 시달렸던 여름이라서 유난히 가을이 기다렸졌던 것 같다.
계절이나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형태의 기다림이든 삶의 기폭제가 되어주고 때로는 윤활유 같은 가치성있는 효용이 발생하기도 하거니와 삶의 질을 순화시켜주는 아름다움을 지닌 전화위복의 보람으로 격상되기도 한다. 살아온 행적에서 얻어지는 보람과 크고 작은 감사와 자족에서 얻어지는 긍지와 자부심을 삶의 표적처럼 붙들 수 있는 은밀한 가치성을 기다림의 옆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다림은 때로는 또다른 기다림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삶의 보람이요 섬김의 단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진정한 기다림의 보람은 적극적인 기다림일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확고한 이정표를 주시하며 길을 떠났다는 믿음이 붙들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기다림이 없었다면 삶은 탄력을 잃은 채 맥없이 풀려버렸을 것이다.
기다림의 진액이 삶의 기틀을 만들었고 기다림에 기대어 생을 지탱해온 것일게다. 기다림 끝에 만나지는 벅찬 기쁨을 안아보고 만져보고 만끽하고 싶어 노을 짙은 황혼 무렵이지만 풍성하고 황홀한 기다림으로 남은 날들을 소박한 윤택으로 가꾸어가려 한다. 온화한 설렘과 소망이 깃든 유유자적하는 기다림의 정서를 함양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