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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여름 나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9-03 09:59:52

행복한 아침,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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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이른 아침 창을 열면 산뜻한 기류가 밀려든다. 처서가 들어섰다는 안도감에 대책없던 무더위가 한풀 꺾인 흐름새다. 여름은 이따금은 갑작스레, 때로는 아직 절정이다싶은 순간에 끝나버리곤 했었지만 한 주간은 그나마 더위먹은 체증을 가라앉히듯 서늘함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늘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까지는 아직이다 싶기도 하고 서두르는 건 아닌지 싶으면서도 소박한 가을 바람을 만나고 싶음을 숨길 수 없었다. 지구도 우주 질서를 따라 기울기를 조절하며 아침 저녁으로 수은주의 휴식을 선물처럼 전해주었나 싶다. 산책길에서 만나지는 숲도 밤새 푹 자고난 표정으로 만상을 깨우기 시작하고 투명한 미소이듯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있는 한가로운 구름이 마냥 달려도, 한없이 느슨하게 달려도 괜찮다 한다. 삶의 궤적을 가능한 단순하게 남기라는 수신호 같기도 하다. 언제나이듯 계절 요약은 다가올 계절을 그리는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계절과 어우러지고 넉넉한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계절 나이테는 완성도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연록의 풋풋함도 어제 일인듯 조락하는 잎들의 쓸쓸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름은 검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수많은 생명이 번성하고 결실을 위해 화려하고 풍성했어야만 했었다. 분주했고 풍요롭고 넉넉함이 넘쳐났다. 봄처럼 화사하지도 않으며 가을처럼 비워내지도 않았고, 겨울처럼 차갑게 침묵할 줄도 모른다. 계절 중 성장 폭과 깊이가 으뜸이다. 계절의 중심에 서서 순환을 일구어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양한 지구촌 배경에도 뜨거운 열정으로 순환에 충실했고 가을에 건네줄 무르익음에도 손 부끄럽지 않으려는 추스림에 경외감마저 품게되는 듬직함을 놓치지 않았다. 백로가 들어설 무렵이면 짙푸름을 끌고가고픈 여름이랑, 잎새를 물들이고 싶은 가을이랑 마지막 주도권이 치열해진다. 계절이 들어서려고 밀려나지 않으려는 밀당같지만 계절의  순환은 이미 질서 가운데 흐르고 흘러왔던 것이라서 제아무리 애를 써도 여름은 가을을 밀어낼 수 없음이요 제아무리 결실의 수확을 자랑한다한들 겨울 추위를 막을 순 없음이다. 설령 봄바람에 마음이 설렌다 한들 어차피 여름이 들어설 길은 열어주어야하는 것을. 계절은 늘상 치열한듯 오밀조밀 정겨운듯 어김없이 찾아들고 다시 떠나고 포옹으로 반기고 아련한 손짓으로 헤어진다. 마치 생의 조망도처럼 때로는 회전목마처럼 인생을 입체적으로 단면적으로 들여다보며 삶을 측량하고 설계하며 탄탄한 결실을 꿈꾸며 구축해가라는 메시지를 남기고는 홀연히 떠난다. 더위랑 추위랑은 평생을 같이 했지만 늘 새롭듯 만난 것 같은데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여름이 왠지 쓸쓸하고 울적해 보인다. 여름나기 이벤트는 팬데믹으로 하여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채 여름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더위와 맞짱뜨듯 쨍쨍한 태양 아래 산에 오르기도 하고 뜨거운 음식으로나 백사장 열기로 이열치열 더위와 맞서기도 하고 서늘한 느티나무 아래서 신선놀음을 즐기고, 차가운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녹음 짙은 그늘을 찾는 피서 고전을 미룰 수 밖에 없었지만 오곡백과는 튼실하게 여물어가고 수목은 여념없이 나이테를 그려내고 있었는데 미처 감사의 마음이 닿이지 못했음을 고백하게 된다. 계절은 마치 미숙하고 옹졸한 인생들을 품고 미처 영글지 못했음도 꾸짓지 않으며 계절마다의 자태와 향내를 마음껏 부려놓고는 끝자락을 보인다. 여름 내내 가을이 다가서도록 성숙으로 무르익었고 적절한 어울림으로 인생들의 삶의 기틀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정에 비할 바 아닌 깊은 어루만짐으로. 여름나기의 고충보다 결실을 바라보는 부풀은 꿈을 그려내고 있었던 여름날의 겨룸과 대처가 긴 여름날의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여름나기를 무던히 견뎌낸 소시민의 마음에까지 풋풋한 안도의 향기가 번져나는데 끝맺음하려는 여름 표정이 어찌 아쉽고 애잔하다. 여름 끝물 풍광은 더위에 시달린 끝이라 모든 움직임을 최선껏 절제하며 한숨 돌리듯 분수령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있다. 팬데믹 위협에도 찜통 무더위에도 탈 없이 여름나기를 보낸 감사가 밀려든다. 무더위에 겹적삼 입듯 뜨거운 열기가 분출되는 와중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틈에 계절은 갈림길 풍경에 젖어들고 있다. 불현듯 가을이 들어서기 전에, 남아있는 짧은 여름이 다 가기전에 뜨거운 열정을 품은 넉넉한 품새가 아름다웠노라고, 여름날 사랑과 수고를 잊지 않겠노라고 함축된 시어로 읊조려 주리라. 아직은 싱싱한 초록 길섶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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