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전이 어느날 동시대에 살았던 유명한 성서학자 중의 한 사람인 앤드류 버나라는 학자에게 그분이 쓴 책 하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책은 레위기 주석이었습니다.
레위기 주석을 읽고 스펄전 목사님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앤드류 버나라는 학자는 나이가 늙어서 얼마 안 있으면 세상을 떠나가실 분임을 알았기 때문에 스펄전은 그 책을 읽고 얻은 큰 감동을 그분 앞에 다시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최송하지만 앤드류 버나 박사님.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좋은 책을 쓰신 당신의 싸인을 받고 싶고 그리고 당신의 사진을 갖고 싶습니다.”
앤드류 버나 박사가. “아니. 여보게 스펄전.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내 사진을 가져가서 무얼하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님이 계속 고집하니까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사진 뒤에다가 재미있는 이런 설명을 썼습니다. “당신이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나를 볼 수가 있었다면 좀더 나은 사진을 가질 수 있을텐데. 왜냐하면 잠시 후에 그분이 계신 것처럼 나도 그분을 닮을 수가 있었을 테니까” 이 경건한 성경학자의 마음 속에 불붙고 있었던 열망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싶습니다. 피 흘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내 인격의 변화에 있어서 남은 이 한해는 얼마나 나를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신 한해였을까? 이 결산없이 한해를 지나가지 마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남은 이 한해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또 똑 같은 한해로서 불안과 좌절 속에 다시 오는 한해를 지나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범하는 또 하나의 오류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금세를 위해서는 살아가되 내서(영혼)을 위해서는 삶의 배려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삶의 공간 속에 삶의 의식 속에 오늘이라는 이 현실과 금세는 자리를 잡고 있지마는 내세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향락과 사치 속에 빠집니까? 현대인들의 향락과 사치의 바탕 속에는 이 세상이 전부라는 의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촌각의 시간을 아껴가며 이것을 즐기지 않고는 절대로 우리의 영혼이 만족할 수 없다는 유혹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쾌락주의와 향락주의의, 의식구조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인간 정신사의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만들어낸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며칠 전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통화 신호벨의 노래가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Play Play young play. Old no play” 그래서 통화를 하면서 물어봤습니다. 통화 신호음 노래가 무슨 뜻이냐고. “젊어서 많이 놀고 즐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속에 없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즐기겠지만 하나님이 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들은 젊었을때나 나이들었 때나 주를 위한 삶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이 다 잘 되어갈 때 우리는 쉽게 방심하고 쉽게 안일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이라는 쾌락 속에 몰두합니다. 이런 현상 속에서 기독교인은 더욱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해가 점점 저물어 갈수록 우리는 이웃과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이것은 내세에 대한 안목, 통찰력, 소망이 우리의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내세의 눈이 세상에 가리워지지 않도록 오로지 주님만 더욱 더 바라보면서 남은 시간들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