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여름방학 때 일이다. 태양이 아침부터 열을 뿜어내는 무더운 날, 아버지와 나는 삼사십 리 되는 길을 걷고 또 걸어 여름을 밟으며 터벅터벅 볼 일을 마치고 집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가만 있어도 땀이 도랑을 타고 흐르는 날, 우리는 먼지를 일으키는 길을 걷다가 좁다란 논둑 길을 따라 걷고, 자갈 길을 지나고 풀 속 길을 거쳐 먼 길을 걸었다. 마침 우거진 숲 속 길을 들어서니 풀벌레며 새들의 노래 소리가 어우러져 들려오고, 실바람은 꽃 향기, 풀 내음을 가득 안고 솔솔 불어와 우리를 맞아주어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려 그 바람을 안아주었다.
흠뻑 젖은 땀을 훔치면서 시냇물에 손 발을 담그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초록빛 파란 물에 두 손을 담그면……”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 속에 고물 고물 다슬기가 모여 있다. 아버지는 얼른 런닝 셔츠를 벗어 자루를 만든다. 다슬기가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엄마에게 좋은 약이 될 거라며 아버지는 열심히 다슬기를 잡아 자루에 넣는다. 엄마한테 좋다는 말에 나도 신나게 노래하며 다슬기를 잡는다. 다슬기 한 자루를 채워 집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엄마는 신경통으로 자주 아파한다. 이 약 저 약을 써보아도 효력이 없다. 이런 엄마를 걱정하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던 아버지가 방울방울 물 떨어지는 다슬기 자루를 엄마에게 건네준다. 어서 끓여 마시라며 환한 미소를 짓는 아버지가 정말 멋져 보였다.
아버지를 따라 사업지를 돌다 보면, 가는 곳마다 아버지를 반가와하며 좋아한다. 그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속마음 때문인가 보다.
함께 먼 길을 걷는 여행길에 아버지가 들려 주던 성경 이야기, 역사 이야기,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 이야기 그리고 항상 하나님께 지혜 구하기를 잊지 말라던 말씀들은 지금까지도 귓가에 생생하다. 여름이면 땀 흘리는 나에게 부채질로, 겨울이면 언 손 호호 불어 녹여주며 걸음을 재촉하던 아버지와 나눈 시간들은 내 가슴속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세상 떠날 때도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셨던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나의 아버지이다. 그리운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