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역사의 유물이 된 비퍼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처음 나왔을 때는 허리에 하나 차고 있으면 없는 사람들과는 구별됐다. 비퍼가 도입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 직종도 많다. 하지만 비퍼는 족쇄이기도 했다. “삐삐-“ 울리면 급히 부근의 전화기부터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시간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휴대전화는 말할 것도 없다. 완충역이라고 할까, 그런 역할을 해 줄 시간은 이제 사라졌다. 뭐든 즉각적이다. 편리해진 만큼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성급한 응답이 실수를 부를 수도 있다.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이 있게 마련, 줌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전에는 일반 사람은 존재도 잘 모르던 줌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유용하고, 편리하다.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커뮤니케이션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점차 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줌 사용이 일상화된 사람, 직업상 줌을 필수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곧 그들이다.
재택 근무가 줌 근무가 되면서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 30분짜리 줌 미팅을 13개 해야 했다는 한 전문직 종사자는 저녁7시면 침대에 눕게 된다고 한다. 줌 근무 일주일이면 기력이 소진된다는 이도 있다. 업무 피로도가 오피스 근무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달 미 심리학회의 간행물(Technology Mind and Behavior journal)에 실린 줌에 관한 한 논문이 관심을 모은다. 스탠포드 대학의 한 교수가 쓴 이 논문은 최근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줌 피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클로즈업된 사람의 눈을 과도하게 오래 주시해야 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직접 만나 미팅을 할 때는 이렇지 않다. 듣다가 노트를 내려다보거나, 옆자리 사람과 잠시 말도 나누게 된다. 하지만 화상 모임에서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처럼 상대방에게서 눈을 떼기 어렵다.
자신의 얼굴이나 제스추어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처음에는 신기할 지 몰라도 계속되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오피스에서 종일 누군가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 얼굴 표정까지 거울로 비추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연히 자신의 표정과 동작에 신경이 쓰이고, 평가도 하게 된다.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세팅해 놓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동영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앉은 자세나 몸의 움직임을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걸어 다니며 할 수도 있는 전화와 비교하면 명확하다. 영상 통화를 하면 한 자리에 붙박이가 된다. 이런 동영상 모임은 인지적인 부담을 높이고, 쉬 정신적인 피로감을 불러온다.
이런 지적들이 제기되면서 비디오 미팅과 관련한 피로도를 수치화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줌 사용자 1만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마친 연구팀도 있다.
줌 피로도는 특히 줌 미팅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각하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회사의 매니저 등이 곧 그들이다. 일부에서는 화상회의가 최선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로만 업무를 해도 지난 수 십년간 아무 문제 없지 않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줌이 코로나 시대의 총아가 된 것은 그만큼 유용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비퍼에서 휴대 전화, 음성 통화에서 영상 통화로 발전해 가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뒤로 되돌릴 이유는 없다. 팬데믹이 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영상 회의의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들이 강구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줌 피로도를 낮추는 일은 사용자들도 일부 시도할 수 있다. 미팅 도중에 고개를 돌리며 쉬어 가는 것도 방법이다. 줌 회사측도 고객들의 이런 의견을 반영해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동영상 통화와 모임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