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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의 2월 10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3-01 14:14:18

수필,조성일,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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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그는 60이라는 숫자를 어색해하며 자신의 나이를 셈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피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몇인지도 분명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워낙 셈에도 약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모친이 얘기해준 그의 태어난 날은 음력으로 1957년 11월 23일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한 교회에서 25년이 넘게 목회 생활을 했다. 그가 목회하던 교회 여전도회에서는 그의 생일을 해마다 챙겨주었는데 그럴 때면 그는 늘 미안해했다. 주일 예배 후 공동 친교 식사 시간에 케잌을 자르며 작지만 정성 담은 선물을 받는 것도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미안했던 것은 그의 생일 날짜의 애매함 때문이었다.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서 기억하는 것은 그의 모친께는 기쁨이었겠지만 다른 이에겐 꽤 신경쓰이는 일이었으리라. 새해  새 여전도 회장이 직책을 맡으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바로 코 앞에 닥친 것이 연말과 신년초를 왔다 갔다 하는 담임 목사 자신의 생일인 것을 알기에 축하를 받으면서도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은 인터넷을 통해 그가 태어난 음력 1957년 11월 23일을 양력으로 찾아보니 그가 자신이 태어난 해라고 믿고 있었던 1957년이란 해를 넘겨 1958년이 나왔고 날짜는 1월 12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해가 넘어가는 것과 태어난 해의 양력생일이라고 제시된 새로운 아라비아 숫자의 조합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리고 이른 19살에 시집와서 그해 말미에 그를 낳을 무렵에 성탄절 종소리가 들렸다는 모친의 기억으로 볼 때 그의 생일이 해를 넘긴 1월이 되기엔 석연치 않아했다. 어쩌면 모친의 음력 날짜에 대한 기억이 틀려서 기억보다 보름 쯤 앞이 그의 태어난 날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어림짐작했다. 아무튼 그날 그의 모친은 그렇게 그녀의 5남매 중 첫 자식이자 그 집안의 큰 손자를 낳았고 그의 조부는  집 울타리 안의 작은 둔덕위에 고추 말리던 건조장을 헐고 지은 예배당 종을 예배 시간도 아니건만 힘껏 댕그렁 댕그렁 쳤다는데 그의 첫 손자를 얻은 기쁨을 그렇게 표현했나보다. 이렇게 그를 낳은 모친의 날짜 기억과 당시의 상황이 서로 다르니 그의 생일은 더 모호해졌다. 그리고 그의 조부는 시골 면사무소에 가서 그의 출생 신고를 2월 10일에 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신의 나이를 세는 것에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음력으로는 그리고 양력으로는 이렇다며 설명을 하는 것도 점점 더 구차스럽게 느꼈다.  더욱 ‘그럼 너는 58년 개띠구나’ 하는 소리는 더 듣기 싫어했다. 한국의 학교 새학기가 3월에 시작되는 관계로 그의 동기들 또한 대부분 닭띠였다. 그리고 그는 나름 할머니가 닭띠요 아버지도 닭띠 그리고 나도 닭띠라는 묘한 연대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렇게 애매한 생일로 살던 그가 10여년 전에 미국으로 왔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50살 무렵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신문기자를 했다는 동갑내기가 모임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얘기해주었다는  “목사님, 50 넘어서 미국 오는 것 아닙니다” 라는 말이 잊히지 않고 마음과 머리 속에 새겨진 것은 그의 말이 옳았다고 동의하는 순간들이 그동안 자주 자주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 한국에 사는 동생이 전화로 통화를 하다가 “형, 나도 이제 진갑이 되었어” 하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진 그는 “그럼 이젠 네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가 보네” 라고 답하며 실감되지 않는 나이들에 서로 웃었다. 그의 조부는 그가 국민학교 1학년 무렵인 환갑을 갓 넘기고 돌아가셨는데 이미 두 손자가 그 조부의 수명을 넘겨 살고 있었다. 특별히 귀가 크셨던 그의 조모는 그 후로도 30년도 더 넘게 장수하시다가 96세를 향수했다.

미국에 와서도 생일로 고군분투하던 그는 미국에 와서 세월과 함께 모난 성격들이 점점 깎이고 양보와 타협도 해서 이제는 주변의 권유로 운전면허증에 적힌 생일을 그의 생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를 낳으신 모친께도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겠다고 양해의 말씀을 드렸다. 그의 부친은 어는날 그와 통화를 하다가 기분이 좋으셨던지 60이 넘은 아들인 그에게 “이제 네가 철이 들어가나보다”라고 하셨는데 그 때 아버지의 그 웃음 소리를 그는 오래 기억하기를 원했다.

이틀 전 그는 갑작스런 작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다녀왔다. 팔목에 팔찌처럼 달려있는 환자 정보를 보며 그는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우선은 아직 62세란 것이 반가웠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65세 쯤으로 기억할 터인데 미국에 와서 사는 나이에 관한 한 특별한 호사처럼 여겨졌다. 이틀 후면 63세가 되겠지만 이틀 남은 62세를 그는 즐기고 싶었나보다.

오늘이 2월 10일이고 생일이야 어떠하든 여전히 그리고 평생 닭띠인 그에게 가족들의 축복과 축하송이 들려온다. 이날에 그는 가곡 ‘그대 있음에’를 들으며 살아 있음에 그리고 살아남았음에 감사하고 있다. 미국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맞는 2월 10일의 복된 오전에 그는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감사를 하고 있다. 이젠 나도 이전보다 그를 더 이해하고 쓰다듬어 사랑하며 그의 철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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