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미투, 빚투 당시처럼 학폭을 화두로 봇물 터지듯 요란하다. 체육계로 시작된 폭로가 정계 연예계로 확산일로에 있지만 사실과 다른 루머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까지 거들고 나섰다.
물밑처럼 가라앉아있던 집단 따돌림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는 유년부터 초,중,고등학교의 학폭, 심지어 대학 생활에서도 직장에서도 은밀한 집단 따돌림이 존재하고 있다. 직장인의 86.6%가 ‘왕따 경험이 있다’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는 통계가 있다. 각급 학교나 직장에 집단 따돌림에 앞장서는 노련한 사람이 등장하면 피해자 발생이 시작된다. 따돌림 당하는 계층 구분은 없다. 사회 초년생 그룹에도 중년층, 노년층에도 따돌림 바이러스는 쉼 없이 전염되고 번져가면서 피해자를 양상해내고 있다. 묵묵히 견디어온 피해자들을 함부로 얕잡아 보았던 터라 언어 폭력에 유언비어까지 동원해가며 왕따로 몰아붙인다. 친구가 되든지 짓밟히든지. 여지가 없다. 친구 때리는 일을 멋으로 생각하는 인면수심이 친구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폭 가해자가 내민 사과문은 피해자들을 다시금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위기를 모면 해보려는 임기응변식 사과로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인데, 명확한 반성 없는 구체적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형식적인 거만한 사과는 피해자를 다시 한 번 모욕의 대상으로 몰고갔기에 대중들까지 광분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론도 나빠졌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도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미스런 폭로가 이어지고 가해자 두 선수는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국가대표 자격도 박탈 당했다. 시달림을 받았던 피해자들의 고발로 쌓아온 공적들이 응징받는 시대상이 언짢고 통탄스럽고 한심한 회의감이 든다. 강자 앞에선 굴종을 선택하고 약자에겐 비겁한 억압과 가혹한 수탈을 거리낌 없이 자행한 가해자의 우월의식은 공감능력 저하를 자각하지 못한 비운을 안고 있다. 순간의 심리적 통쾌감 보다 그늘과 얼룩이 생을 따라다니며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건강치 못한 정신적 발달 미숙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에 반해 집단 따돌림 피해자는 자아효능감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스스로의 능력이나 효능감에 대한 기대와 신념, 목표 달성 가능성과 업무수행에 대한 자신감이 위축 된다. 묵묵히 감수해온 불안과 비난이 수시로 엄습하는 트라우마로 시달리게 된다. 소외시키고, 루머를 퍼뜨리고, 모함하고, 경멸과 괴롭힘도 모자라 폭력까지 행사하는 무규범적 행동은 물론 이에 동질의 가해자로 동조하는 무리들까지, 부정적 자기개념의 휘두름이다.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서운 범죄이다. 언젠가는 자만이 빚어낸 결국의 괴로움이 내 몫으로 되돌아오는, 심는대로 거두는 세상 이치를 깨달았으면 싶다.
집단 따돌림 현상의 공통점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힘의 불균형과 고의성과 반복성이다. 고질적 악순환의 반복이 노년 공동체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최근 ‘어르신들까지 왜 이러시나’ 주제로 노인 아파트 집단 따돌림이 시사된 적이 있다. LA 한인타운 노인아파트에 입주한 김 할머니는 자식 근황을 궁금해하는 질문에 사실 그대로를 대화로 나누었을 뿐인데 터무니없이 자식자랑이란 죄명으로 지속적인 집단 따돌림을 당해왔다. 복도에서 스쳐도 투명 인간 취급에다 등 뒤에서 수근대기도 하고 인사를 해도 아는체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정신 상담을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심적 갈등을 겪어냈다고 한다.
이미 나이들고 세상을 달관했겠지만 얼마나 마음앓이를 하셨을지 안타깝다. 자식들의 지위나 재력을 문제 삼기도 하거니와 차림새로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몸이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이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는 더러운 세상이다. 나이 들수록 부족하면 서로 보듬어주고, 힘겨우면 나누고, 더불어 어우러지면 척박한 세상에서 따돌림시키는 무리도 따돌림 당하는 힘든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터인데. 하기사 권력, 금력, 폭력을 빌미로 집단 따돌림을 함부로 자행했던 사람들이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인격적 지각이 있었더라면 ‘집단 따돌림’이란 언어조차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딱하고 개탄스럽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나아가서는 인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안목이 열린다면, 밟혀도 되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인격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공감대가 어렵지 않게 형성되리라 믿고 싶은데, 사람 인(人) 글씨체가 어찌 아찔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집단 따돌림이 자헹되고 있을 것이라서 사람 사는 세상이 문득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