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권정희의 세상읽기] 텍사스 눈폭풍이 보여준 것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2-26 10:10:30

권정희,세사읽기,텍사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꽁꽁 얼어붙었던 텍사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주 화씨 0도를 밑돌던 기온은 70대로 껑충 뛰어올랐고, 무엇보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온다. 텍사스 주민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따뜻한 겨울날씨, 그리고 21세기 미국에서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전기와 수돗물은 그렇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난 주 여실히 드러났다.

 

텍사스는 미국에서 전기 생산량 1위인 주이고,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매장량도 1위다. 거기에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이 들어와 있어서 세계 에너지 캐피탈로 불린다. 그런 텍사스에서 수백만 주민들이 전깃불도 없이 히터도 못 켠 채 오들오들 떠는 일이 며칠씩 계속 되었다. 기후재앙이라는 불가항력 그리고 무방비로 일관한 주정부 당국의 과실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2월의 셋째 주, 텍사스는 ‘겨울왕국’이었다. 대륙의 최남단에 북극한파와 눈폭풍이 몰아쳤다. 90년 만의 혹한이라는 기상이변이 기후변화 탓이라면 주민들을 동사 직전까지 내몬 책임은 주정부 전력관리 당국에 있다. “텍사스에 한파는 없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보다 비용을 앞세운 결과다. 발전 및 송전 시설들이 얼어붙을 상황에 대비한 방한 및 동결방지 장치가 부재했다.

 

게다가 텍사스는 전력망에 있어서 ‘섬’이다. 미 대륙 전체의 전력공급은 동부 전력망과 서부 전력망이 관장하는데, 텍사스는 여기서 빠졌다.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전력망을 갖고 있다. 전력수급에 문제가 생겨도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강추위에 전기수요는 급증하고 공급이 미치지 못하면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수도관이 얼면서 물이 끊겼다. 마켓마다 식료품과 식수는 동이 나고 수백만 주민들은 집안에 앉아서 이재민이 되었다.

 

춥고 배고프고 캄캄했던 한주, 그러나 암흑 속에 빛은 있었다. 온정의 빛들이 동네마다 존재를 드러냈다. 재난이 닥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의, 친절, 호의 … 훈훈한 인정으로 텍사스는 춥지 않았다.

 

오스틴 교외에 사는 지인에게 지난 주말 안부전화를 했다.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정전된 며칠, 식품을 구할 수 없어 샐러드와 미숫가루를 조금씩 먹으며 지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정전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평소에는 저마다 바빠서 하이, 바이 하며 스쳐 지나가던 이웃들과 이번에 많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이웃이 매일 와서 문을 두드리더군요. 괜찮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챙겼어요. 어느 날 내가 눈을 치우려 하자 이웃들이 언제 봤는지 모두 삽을 들고 나와서 순식간에 치워주더군요.”

 

전기 끊긴 이웃에게 발전기를 빌려주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불러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하고, 부모 집으로 대피하려는 여성의 차가 너무 작아 위험하다며 20마일 빙판길을 직접 운전해 데려다준 이웃 등 ‘이웃 사랑’ 스토리는 끝이 없다. 거대한 이웃의 망이 형성되었다.

 

오스틴의 한 부부는 지난 14일 수퍼마켓에 주문한 식품을 배달 받으면서 배달직원까지 함께 받아들였다. 배달 온 여성이 폭설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자 생면부지의 그를 집안으로 들이고는 따뜻한 침실과 식사를 제공했다. 부부의 권유로 5일을 머물었던 그는 “팬데믹 와중에, 먹을 것 귀한 이 때에,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하며 감사하고 감격했다.

 

휴스턴의 ‘매트리스 맥’은 이번에도 2개 가구점을 개방했다. 수십년 가구 소매업을 하며 지역 유명인사가 된 짐 맥킹베일은 10만 평방피트의 초대형 가구전시장을 종종 대피소로 내놓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루이지애나에서 이재민이 몰려왔을 때 그리고 2017년 허리케인 하비로 휴스턴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도 가구전시장을 개방했다. 이번 혹한 중 가구점에는 매일 300명씩 모여들어 따뜻한 식사를 하고 푹신한 침대와 카우치에서 밤을 보내며 잠시 시름을 잊었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수칙이 엄격히 준수된 것은 물론이다.

 

상당한 비용을 들이며 그는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할까. TV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감당할 만하니까 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건 이들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희망을 줘야 한다.”

 

지구에서 동시대를 사는 우리는 기후변화 운명 공동체다. 이번에는 텍사스였지만 언제 어느 지역이 기후재앙에 강타당할 지 알 수가 없다. 폭풍/허리케인, 폭염, 혹한, 가뭄, 산불이 날로 잦아지고 극심해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바다. 자연 앞에서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가 결국은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부의 사회안전망이 작동하지 못할 때 당장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이웃, 우리의 몫이다. 머리가 계산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열리는 측은지심 덕분에 이번 혹한 중 텍사스가 춥지만은 않았다. 따끈한 수프 한 그릇, 담요 한 장, 위로의 말이 수많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였다. 그래서 그들이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희망을 갖는다면 그것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수필] 내 인생에 대한 예의
[수필] 내 인생에 대한 예의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합리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배고픈 여우가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타운하우스 보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타운하우스 보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흔하다. 한국에서도 시골에는 노년층이 남아 있고 젊은 세대는 대부분 도시에서 생활한다. 도시에는 일자리도 많

[내 마음의 시] 님은 나의 봄
[내 마음의 시] 님은 나의 봄

월우 장 붕  익(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긴 겨울 끝에눈이불 뚫고 고개드는수선화이듯이님은 설레이는 기쁨으로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님의 몸짓 하나로온 세상은어느새 봄빛으로 물듭니다.

[애틀랜타 칼럼] 최악의 상황에 맞서라

이용희 목사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 “캐리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기 조절 장치를 개발한 기사이며 캐리어 회사의 사장이었던 윌리스 H. 캐리어가 실행했던 방법

[법률칼럼] 미국 이민, 이제는 ‘기록’이 아니라 ‘패턴’을 본다… 2026년 심사의 변화

케빈 김 법무사  2026년 현재 미국 이민 심사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개별 사건이나 특정 기록 중심으로 판단이 이루어졌다면, 최근 흐름은 신청자의 전체적인 ‘행동

[행복한 아침] 꽃가루  폭력

김 정자(시인 수필가)   꽃가루가 씻겨 나갈 만큼의 비가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꽃가루가 천지를 덕지덕지 뒤덮는 호통 속에 하루들의 지친 걸음이 지속되고 있다. 세상은 전쟁으로 인

[신앙칼럼] 수미상관(首尾相關)의 하나님: 왕사남의 당당함 (The God of Symmetrical Correspondence: The Poise of a Man Who Lives with the King, 요한복음 1:14)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장막을 치신 왕: 비굴하지 않은 자존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삶의 새로운 관점이 열릴 때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삶의 새로운 관점이 열릴 때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에 삶의 새로운 관점을 열어나가는 세계관의 변화에 의한 미래 지향적인 삶의 도전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삶의 새로운 통찰력은 유익한 관점을 창

[추억의 아름다운 시] 님의 말씀

김소월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길어 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새

[삶과 생각] 길과 줄
[삶과 생각] 길과 줄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