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한파는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비드-19나, 바이든 정부가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새로운 정책들보다 잠재된 의미가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이제 시작 단계인 지구의 기후 변화가 불러 올 재앙의 작은 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기후변화에 관한 주목할 만한 책을 펴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코비드-19 퇴치는 기후변화를 막는 일에 비하면 “아주, 아주 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류가 이룰 수 있는 업적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텍사스 한파는 북극 온난화가 원인이었다. 무슨 말인가. 북극이 더워졌다면 텍사스는 추위 보다 폭염에 시달려야 하지 않았을까.
예컨대 지난해 6월말 시베리아에 있는 북극권 마을인 베르호얀스크의 낮 기온은 화씨 100도를 넘었다. 이 일대는 겨울 최저기온이 화씨 -90도(섭씨 -68도)를 기록하던 곳. 이런 동네의 여름 기온이 남가주 보다 높아진 것이 북극 온난화의 결과라면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른다.
북극 한파를 북극에 가두어 두는 것은 성층권에 부는 강한 제트 기류다. 서에서 동으로 부는 이 바람은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할 수 없도록 가두어 두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제트 기류의 강도는 극지와 중위도 지역의 온도 차에 의해 결정된다. 온도 차가 클수록 바람은 세진다.
온난화로 북극 기온이 오르면서 중위도 지방과의 온도 차가 줄어들자 바람의 속도는 느려졌다. 북극 찬 바람은 느슨해진 울타리를 밀고 2년전에는 시카고 쪽으로 내려왔다. “북극 보다 더 춥다”는 비명이 그쪽에서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텍사스 쪽이었다.
북극 한파를 설명할 때는 극 소용돌이(polar vortex)라는 말도 등장한다. 지구의 대기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와 강도의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태풍은 여름에 발생하는 열대성 소용돌이다. 극지 상공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대규모인 저기압 덩어리가 꿈틀대고 있다. 변화무쌍,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 역시 기온이 오르면 강도가 약해지고, 떨어지면 강해진다. 온난화로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바람의 강도가 약해지면 찬 바람은 쉽게 남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여름이 여름답지 않을 때 대기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반응과 현상을 보인다. 주민들은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북극 한파가 밀고 내려온 곳은 텍사스뿐 만 아니라 오클라호마, 테네시 등 7개 주에 이르렀다.
문제는 북극 한파가 다음에는 어느 쪽으로 밀고 내려올 지 모른다는 것이다. 멕시코 국경까지 밀어 닥친 이번 한파를 보면 미국 어느 곳이 북극 한파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월 평균 기온이 섭씨 9도 안팎이라는 남부 텍사스의 휴스턴도 영하 7도까지 떨어진 뜻밖의 한파로 텍사스에서는 고속도로에서 130중 연쇄충돌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체온 조절 기능이 없는 바다거북이는 4,500여 마리가 실신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전력 생산시설이 멈추고 수도관이 동파되면서 전기와 식수 공급도 끊어졌다. 한파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지역의 연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내외인 곳에서 한파에 대비한 예산을 배정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이를 납득했을 것인가.
앞으로 잇다르게 될 지구 온난화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이에 대비한다는 것은 코비드-19 대처 보다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