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심리학 책 속에 머물러 있던 생경한 용어들을 접하는 일이 잦아졌다. 음모론, 가짜 뉴스, 거짓 정보 덕분이다. 그 현상과 원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문 용어들이 저자 거리로 불려 나왔다. 거짓 정보, misinformation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조작된 거짓 정보는 따로 disinformation으로 나눠 부르는 등 그 동네는 복잡하다.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을 아날로그 식으로 뭉뚱그리면 그냥 유언비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언비어 유포죄’는 말로만 존재하지 실제로는 법에 없는 죄목이다. 거짓말이라며 유포를 막으려 했다가는 미국서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 위반으로 몰리게 된다.
한국에서도 단순히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만으로는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고 한다. 이로 인해 명예 훼손이나 공무 집행방해 등의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 유언비어가 아주 날개를 달았다. 권세가 대단하다. 원인은 크게 2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그런 시대상황이 닥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괴담 수준의 거짓말을 퍼다 나르는 운반수단이 고도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언비어가 태어나 쑥쑥 자라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다. 미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우선 코비드-19. 미국인으로서는 스패니시 플루 이후 1세기만에 겪는 바이러스의 대반란이다.
사소한 마스크 착용 문제에 이어, 막상 백신이 개발됐어도 접종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은 미지의 세계다. 당연히 검증되지 않은 갖가지 정보와 주장이 번지고 있다. 심지어 5G 송신탑을 타고 코비드-19가 퍼진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번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한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대표적인 거짓 정보 중 하나로 분류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영국, 미국, 아일랜드, 스페인, 멕시코에서 진행한 조사에서 나라에 따라 22~37%의 조사대상자들이 바이러스의 우한 제조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서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속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 또한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도 안 될 줄 알았던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등장부터 범상치 않았던 대통령으로 인해 정말 많고 많은 가짜 뉴스들이 꼬리를 물었다.
음모론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 보수 음모론자 그룹인 큐어넌(QAnon) 신봉자가 조지아 주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연방하원에 진출하기도 했다. 반대쪽에서는 그들 세계의 가짜 뉴스를 믿고 있다. 예컨대 지난 선거 당시 우편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연방 우정국의 기능을 중단시킬 것이라는 음모론에 대해 민주당적 조사대상자는 56%가 이를 믿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가짜 뉴스는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음모론을 ‘지적인 욕설’로 부르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거짓 정보는 보편화되고 있다. 문제는 잘못된 정보가 인간의 신념을 조작한 뒤에는 설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자기의 가설에 부합되는 사실만 채택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에 대한 정정이 이뤄져도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신념의 메아리(belief echos)라고 한다는데, 조작된 신념 대신 전면적 진실의 메아리를 울려 퍼지게 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