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뜻 한데로 계획한데로 잘되는 것이 아닌 삶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조건에 맞는 길을 잘 파악하고 청사진을 설계한 후 출발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될 수가 있다. 그런데 나는 수박 겉핥듯이 청사진을 만들어 허황된 꿈을 향해 무모하게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휴스턴에 귀국선물센터를 시작하기 전 철저하게 한인들의 실상과 미국사람들의 취향과 문화를 철저히 파악하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장사가 안돼 고민을 하게 됐다. 때는 늦었는데도 어리석게 희망과 미래를 버리지 못하고 목이 빠지도록 손님을 기다리는데 벨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귀국선물센타지요? “ “예 그런데요.” “그러면 권명오씨 좀 바꿔 주십시오.” “제가 권명오 인데요.” “혹시 한국 KBS TV 탤런트였던 권명오씨가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여보게 나 윤복현 일세.”
브라질로 이민 가신 윤복현 선생님이시다. 나의 인생의 운명과 진로를 밝혀주시고 이끌어주신 윤복현 교감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께선 곧 선물센타로 오시겠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꿈만 같고 믿을 수가 없다.
선생님과 작별을 한 후 7년이 지난 지금 한국보다도 더 먼 브라질에 사시는 선생님을 휴스턴에서 만나게 된 기쁨을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가슴이 벅차고 심장이 마구 뛴다.
중대부고 재학 당시 윤복현 교감 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책 장사를 할 때 대방동으로 이사를 오셨는데 우연히 책방에서 만나게 된 후부터 고생하는 나를 특별히 보살펴주시고 도와주셨다. 선생님은 아버지와 형님과 같았고 때로는 친구와 같은 분이셨고 내 인생의 멘토이신 은사님이시다.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는 배우가 되게 하셨고 또 상상해본 일 없는 이민을 선택하고 미국에 살게 만드셨다. 그런데도 불칙한 제자인 나는 그동안 선생님을 잊고 살아왔는데 휴스턴에서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만나게 됐으니 어찌 감격과 기쁨이 벅차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선생님과 양재학원 원장을 하셨던 사모님께서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봉재업을 시작해 성공을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매제가 한국 해운공사 휴스턴 지사장으로 있기 때문에 자주 온다면서 당분간 매제의 안내를 받게 됐으니 그리 알라며 브라질로 가기 전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나의 편의나 도움을 극구 사양하셔서 할 수 없이 선생님과 첫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선생님은 전교 학생으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던 훌륭한 분이셨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한 모범생도 아닌 나를 사랑하시고 후원해주시고 미래를 인도하신 선생님이시다. 다시 만난 선생님께 무엇이든 정성을 다해 은혜를 보답해야 되는 것이 제자의 도리인데 새로 시작한 선물센타가 장사가 안 돼 막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