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기를 수료하고 학위를 수료하거나 재학과정을 마무리하는 졸업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가 만든 진풍경으로 인터넷 졸업식을 하고, 멤버 스쿨들도 각학교 별로 졸업식을 치르고, 어느 학교는 축사를 비디오로 만들어 보내고, 어느 학교는 실시간으로 인터넷 졸업식을 하고, 어느 학교는 준비된 비디오들을 인터넷 화상으로 같이 관람하기도 한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 보니 다들 나름대로 여러가지 해결책들을 찾고 있는 기이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도 참으로 묘하고 복잡해서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있고, 차라리 인터넷으로 화상회의를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고, 전화로 통화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일 때가 있음을 절감하면서 실제로 집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사람 관계가 제일 힘든 일이란 걸 새삼 느끼게 되는 미증유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의 위력 또한 대단하다.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화상수업 프로그램 도구들과 줌, 행아웃, 팀즈란 이용방법들이 어지럽도록 눈부시다. 콘텐츠 활용중심 수업으로 실시간 원격교육 플랫폼을 활용한 화상수업. 실시간 토론 및 소통에 즉각적 피드백이 가능하다고. 낯설고 서투르고 생경한 세상이 도래했다. 어쨌든 노약자 위치라서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 할 때이다. 노구가 따르지 못할 것이란 예상으로 덮어두려 했던 일들이 즐비해 가는 시대로 돌입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횡포가 종국에는 종식되는 시간이 다가올 것이란 기대감으로 행복을 불러들이는 일에 구태의연해지거나 소홀치 않아야 한다며 노구를 다그친다.
코로나 급습이 불과 몇개월 전 일인데도 흘러간 먼 옛일처럼 느껴진다. 나이 탓으로 돌렸던 노년의 소외감을 코로나 역풍 저항이 가당찮게 부추기고 있다. 노약자라는 테두리로 하여 거취를 제한 받게 되고 공동체에서도 이질적인 연령대가 되어버렸다. 무심코 합류하게 되더라도 분위기 온도차를 직감하게 되면서 몸을 사리게 되고 어디에든 끼어보려는 몸짓 또한 초라할 것 같아서 오라는 손짓 조차도 반갑지 않게 되는 성가신 객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이후 진풍경이 구경거리로 전락할 것 같아 번원한 알음알음까지 거부하게 된다. 지켜온 자존감 손상을 바라지 않기에 어영부영 외톨이가 되고 만다. 노년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게 되고 디딤돌이 되고자 하지만 심중을 읽어줄 겨를이 없는 어쭙잖은 세상을 만난 것이다. 노년이라 해서 특정한 존대를 바라는 것도 아니요, 이유 없는 섬김을 넘보는 것도 아닐 터이다. 자손들의 희생과 수고를 전념으로 감사하고 고마움에 젖어 살고 있음이라서 가끔 안부나 물어주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노구인 것을. 보잘것없는 값어치 없는 희생이었다는 사실만이 동그마니 쓸쓸하게 남겨져 있음을 본다. 삭막한 코로나 진풍경이다.
정 오 같은 세대는 눈길 조차 주지 않지만 해질녘 세대는 빛 밝은 곳을 눈여겨 볼 수 있음이다. 양지에선 그늘진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늘진 곳에선 양지 쪽이 선명히 보이는 법이니까. 코로나가 광분하고 있는데도 세월의 결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흘러가고 있다. 등짝에 업고 다녔던 자식이 노구의 등을 따습게 감싸주는 등받이가 되어 생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음이 북받치듯 뭉클하니 노구를 흔든다. 자식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자식인데 부모는 늙으면 무용지물 노인네가 된다. 그럼에도 사는 날 까지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부모 모습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 날까지 아름다운 늙음을 간직하기 위해 나이 듦이라는 문턱 앞에서 당황하거나 주춤거리지 않아야 할 터이다.
확진자 그래프 추이를 살피다 보면 뉴노멀의 한계 마지노선이 어찌 불안해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 간직하고 있었던 소망도 꿈도 생의 설계도 엇갈리고 휘어지고 얽혀버렸다. 이래저래 코로나는 또 하나의 대역죄를 범했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킨 중범이다. 불면증 호소가 증가하고 있음도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니다. 방치하면 치매 위험과 우울증 주의보에 빨간 불이 켜진다. 나이 깊으신 분들 스스로가 하루들을 슬기롭게 세워나가며 건강수칙을 따르며 불안을 다스리고 극복해야 할 일이다. 보이는 것들에만 연연하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에도 설렘하고 부지런을 피우기로 했다. 절대자를 향한 사랑 표현에도 게으르지 않으려 한다. 자구책으로 짜임새 있는 일과로 소일하다 보면 심심하다거나 시간 낭비는 용납되지 않는다.
무료란 것은 얼씬도 못한다. 할일 없어 지루한 것은 인생을 지치게 할뿐더러 생을 갉아먹는 꼴이 되고 만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다한 노구에게 위로와 칭찬을 베푼다. 노구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음이라고, 거울을 볼 때마다 웃는 연습에도 게으르지 않으려 한다. 하소연도 열심히 들어주며 다가온 현실을 최소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코로나가 불안과 혼란으로 무법천지를 만들었지만 하루 24시간이 36시간쯤이면 좋겠다. 코로나 역풍의 진풍경들이 그 사연의 부피를 갈수록 더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