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도 영어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고요.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한번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요. 먹고사느라 그저 바빠서 학교를 다니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요. 그 흔한 무료 강좌같은 데도 저에게는 사치였어요. 이런 제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공해서 아이들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나이도 많은데다가... 저 빵점 학생 맞지요?”
오랜 이민생활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그리고 자리를 좀 잡은 다음에는 간심히 이루어 놓은 것들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어서 영어공부 근처에는 얼씬도 해본 적이 없었던 K63님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빵점 학생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그럼 선생인 필자도 그녀를 빵점 학생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야말로 필자에게 최고의 학생이었다.
1. 그녀에게는 영어공부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요소인 간절함을 이미 잔뜩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한번 해보면 어떨까가 아니라 기필코 해내고야 말고 싶다는 간절함을 가졌다는 것은 이미 반 이상을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다. 더구나 그 간절함은 자녀들과의 문제에서 비롯이 된 것이었다. 실패의 그림자는 이미 물건너 간 상태였다. 빵점 학생이라니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다. 그녀는 백점 학생이었다.
2.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20년 이상을 보냈다고 했으나 그건 모르는 소리였다. 20년 이상 학교는 다니지 않았으나 그녀는 20년 이상 미국사람들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했다. 깊이있는 영어야 다룰 수가 없었겠으나 기본적인 영어들은 쓰고 또 쓰면서 20년 이상을 보낸 것이었다. 허술하기는 하지만 대량의 기본들을 이미 갈고 닦아서 필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대량의 기본이야말로 필자에게는 큰 축복과도 같았다. 백점 학생 맞았다.
3. 맞다. 그녀는 나이도 많았다. 그런데 50대 초반은 결코 빵점 학생의 필요조건은 아니었다. 40면 더 좋았겠다 싶기는 했다. 실제로 영어공부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해내는 나이는 40대 중반이다. 젊으면 젊을 수록 잘할 것 같지만 막상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영어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는 40대이다. 그 좋은 40대를 지나쳤으므로 만세를 부를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빵점이라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과 기억력은 줄어들기는 한다. 그러나 이해력이 현저히 좋아진다. 공부가 재밌어지는 필수요소가 생기는 것이다.
알고보니 빵점이 아니라 100점 학생이었던 K63님은 그렇게 간절함, 풍부한 기초경험 그리고 이해력을 무기로 공부를 시작해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자녀들의 이야기를 거의 다 알아듣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1. 일단 두꺼운 사전을 들고 아는 단어를 색칠하기 시작했다. 아는 단어는 많지 않았지만 명쾌하고 또렸해지기 시작했다. 들어는 봤으나 아리까리하고 뜻을 알지 못하던 단어들이 아는 단어들 반경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알고 싶은 단어들도 색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단어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2. 색칠한 단어들을 다섯번씩 베껴쓰기 시작했다. 돌아서면 잊혀지는 웬수같은 단어들이 익숙해지고는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는 필자의 확신도 그녀에게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3. 중고등학교의 필수 단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필수 단어도 만만하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레벨이 높다. 열심히 해두면 뼈가되고 살이 될 일이다. 중고등학교 단어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그녀가 안도를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 같아 참 좋다는 얘기도 자주 하면서 그녀는 쓰고 읽는 과정을 즐겼다.
4. 문법도 자세히 하려고 들면 한이 없고 깊고도 깊다. 그러나 요점을 잡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어, 동사부터 차분히 시작했다. 필자는 모든 학생의 아이큐를 40이라고 보고 가르친다. 기본에 충실할 수 밖에 없는 교육법이고 수없는 반복은 필수인 교육법이다. 그렇게 학습하는데 문법의 틀이 잡히지 않을 리 없다. 그렇게 그녀는 문법의 기초를 차분하게 그러나 확실히 다졌다.
5.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소설 단어를 시작했다. 단어는 외우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반복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쳐서 나도 모르게 외워지는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서너달의 소설단어 익히기 과정을 거쳐서 그녀는 무사히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고 반 조금 넘게 이해하면서 시작한 소설책이 이삼십권이 되어갈 즈음 그녀는 필자에게 말했다. “아이들 대화가 거의 다 들려요!!!”
그럴 줄 알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콩심은 데는 콩이 나고 팥심은 데는 팥이 나고 소설책을 읽으면 당연히 들리는 일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도 그녀처럼 살짝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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