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날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4-27 10:27:5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계획했던 은퇴를 실행에 옮겼다. 얼마 전 여든 중반의 선배와 전화를 하던 중에 그 소식을 전하자, 아직은 돈을 더 벌어야 하는 나이인데 왜냐고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돈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넌 돈 고생을 안 해봐서 그래.”

 

툭 던진 말은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막 은퇴를 선언하고 느려진 삶의 속도를 즐기며 만족하던 참에 들은 그 말은, 내 평온한 마당에 툭 하고 떨어진 낯선 돌멩이 같았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들을 마음속 낮은 곳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내가 아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거대한 투쟁이다. 자녀들을 홀로 키우며 풍파를 헤치며 살아낸 그 사연을 내가 어찌 다 가늠할 수 있을까. 그 혹독한 시간이 지금의 단단한 그녀를 만들었고, 한 방향으로만 걸어온 그 뚝심은 분명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어느 상황 속에서도 부를 축적한 그녀의 일관성은 닮고 싶을 만한 매력이었다. 그러나 그 부러움 뒤편에서 낯선 서늘함이 느껴졌다.

 

맞는 말씀이다. 백세시대를 사는 만큼 돈을 좀 더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안도감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망설였다. 하지만 그 감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토너가 멈추는 즉시 쓰러질 것 같아, 결승점을 지나고서도 한동안 더 달려야만 하는 숨 가쁜 관성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난의 기억이 뼈에 사무치도록 깊이 새겨지면, 풍요가 찾아와도 그것을 온전히 알아채지 못한다. 마치 동상에 걸린 살갗이 감각을 잃은 채 추위의 통증만을 기억하듯, 몸은 이미 따뜻한 방 안에 들어왔음에도 온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고난은 사람을 단단한 바위처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창살 안에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지금 스스로 쳐놓은 그 창살문을 열고 나오려는 참이다.

 

나라고 어찌 고생의 문턱을 넘지 않았겠는가. 나 역시 나만의 겨울을 지냈고, 삶의 무게에 눌려 앓던 밤들이 있었다. 다만 나는 그 고생의 기억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내 생의 가장 큰 숙제로 삼기로 했다. 과거 쓰라린 경험 때문에 현재의 만족감을 누리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지금 내 발등을 비추는 햇볕의 따스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모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은퇴를 하는 지금 내 손에 쥔 것은 많지 않다. 변변치 않은 연금이 전부인 나의 노후가 어찌 불안하지 않을까.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어 매 순간 소소한 기쁨을 누려온 나의 지난날에 만족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뒤로 미루지 않았던 과거의 나처럼, 앞으로도 내 영혼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도록 살고 싶다.

 

창밖에는 봄이 한창이다. 봄은 지난 계절에 빚을 남기지 않는다. 결코 뒤를 돌아보며 지나간 계절을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지난날에 피웠던 꽃보다 더 크고 화려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도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다음 계절이 오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며, 조용히 스러지는 봄처럼 나도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 남들보다 앞서가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다. 쌓아둔 것이 많지 않아도,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에 공을 들이며, 생의 마지막 장을 써내려가고 싶다. 누가 감히 내 인생을 겨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제부터는 나만의 꽃을 피우련다. 오늘이 바로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날이다.

 

 

 

댓글 0개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애틀랜타 칼럼] 미래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이용희 목사 “행복이 깃들리라. 홀로 있으면서도 오늘을 내 것이라고 노래하는 사람아. 내일은 최악일지라도 그것이 대체 무엇이냐. 오늘 나는 충실한 사람을 누렸도다. 평화로운 마음으

[법률칼럼]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 이민 서류, 하루 차이가 자격을 가른다

케빈 김 법무사 이민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마지막 날이 주말이나 공휴일일 때가 있다. 이때 “관공서가 쉬니 월요일에 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판단이

[행복한 아침] 익숙해짐의 양면성

김 정자(시인 수필가)    운전이 필수인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출근길이면 커피를 들고 차에 오른다. 시동을 건 다음 Seat Belt 장착을 하고 rearview mirro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6)

SSI 수급자의 소득 불일치 경보(Earnings Alerts)와 10억 달러 과오 납금의 진실국세청(IRS) 자료 연계 시스템의 허점과 수급자가 반드시 챙겨야 할 월별 소득 보고

[신앙칼럼] 겸손과 사랑(Humility and Love, 요한복음John 14:2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명시감상] 비로봉(毘盧峰) — 윤동주“만상을 굽어보기란-/ 무릎이 오들오들 떨린다./ 백화(白花) 어려서 늙었다./ 새가 나비가 된다.

[수필] 스와니 벼룩시장에서 돌아본 애틀랜타 한인회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회장) 새벽마다 스와니 시청 앞 광장에는 정겨운 장터가 열린다. 소박하고 허름한 나무 상자 위에는 갓 수확한 햇고구마와 무, 배추, 제철 과일들이 무심한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과 HOA,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미국의 단독주택 단지(Subdivision)에 살다 보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약자가 있다. 바로 **HOA(Homeowners Association)**이다.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내 마음의 시] 소식 없이 온 가을

헬렌김 그렇게 뜨거웠던 어제도아무런 작별 인사 없었는데,오늘은소식없이 가을입니다. 공원에는 다람쥐가 분주하고한 여름 푸르렀던 나무들은파스텔을 거두어하나 둘 황금빚 옷을 준비합니다 

[애틀랜타 칼럼] 체면을 살려 주어라

이용희 목사 대개 윗사람들은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인 다루듯이 명령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때. 그 자신의 인격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법률칼럼] 취업비자 10만 달러의 벽… 이제는 회사의 해고 기록까지 본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유학생에게 채용 제안은 새로운 출발이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의 기쁨에 앞서 비자 정책의 불확실성부터 따져야 한다.지난 9월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