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화"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잭슨의 영도력에 도전하는 또 다른 분쟁이 생겼다. 그것은 두 번째 '미국은행'(중앙은행)을 발족시키는 문제와 관계되는 것이었다. 최초의 중앙은행은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하에 설립되었으며, 20년 동안 운영하도록 영업 허가가 났던 것이다. 정부가 이 은행의 주식의 일부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이 은행은 정부의 은행은 아니었다. 이 은행은 이익금이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민간회사였다. 이 은행은 통화를 안정시키고 무역을 자극하도록 구상되었었다. 그러나 이 은행이 소수의 유력한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미주리주출신 상원의원 하트 벤턴을 비롯한 서부 주민들과 근로자들은 이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1811년 이 은행의 영업허가 기한이 만료되었으나 갱신되지 않았다.
그 후 수년 동안 중앙은행의 금융 기능이 주로부터 영업 허가를 받은 은행들에 의해 수행되었는데, 이들 은행이 과도한 액수의 통화를 발행하자 큰 혼란을 일으켰고 통화 팽창을 부채질했다. 주립은행들이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를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고, 1816년에 첫 번째 것과 비슷한 두 번째 중앙은행이 20년간의 영업허가로 설립되었다.
이 두 번째 중앙은행은 설립초부터 새로 생겨난 주와 영토들에서, 또 전국 도처의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없었다. 반대자들은 이 은행이 이 나라의 신용대부권과 통화 운영을 실질적으로 독점하고 있으며, 소수 부유층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체적으로는 이 은행은 운영이 잘되었고, 소중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 은행에 반대하는 인기 있는 투사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잭슨은 이 은행의 영업허가 갱신을 위한 법안을 거부했다. 그는 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이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은 동등한 보호와 동등한 혜택에 만족하지 않고, 의회의 조치를 통해 우리(행정부)가 그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 주도록 간청해왔다."고 지적하면서 독점과 특전을 규탄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번복시키려는 의회의 노력은 실패했다.
다음 선거운동에서 이 중앙은행 문제는 상인, 제조업자 그리고 (전반적으로 통화 긴축과 고금리를 찬성하는 채권자들은) 금융업자들을 망라하는 계층과, 은행에 흔히 빚지고 있으며 따라서 저금리를 찬성하는 근로자와 영농자들의 계층 사이를 근본적으로 분열시켜 놓았다. 그 결과는 "잭슨주의"에 대한 열렬한 지지로 나타났다. 잭슨은 자기가 1832년 재선된 것은 이 은행을 재기할 수 없게 부숴버리라는 국민들의 위임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 은행에 공공자금을 이체할 수 잇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이 은행의 영업허가 규정을 손쉽게 무기로 사용할수 있음을 알았다. 1833년 9월 그는 정부자금을 더 이상 중앙은행에 예금하지 말 것과, 이미 예치된 자금도 정부의 지출에 맞추어 정상적인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인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대신 엄격히 제한된 수의, 조심스럽게 선정된 주립은행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음 한 세대 동안 미국은 비교적 규제되지 않은 주립 금융기관에 의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저렴한 금리의 신용 대부를 통해 서부에로의 팽창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했으나, 이 나라를 계속해서 정기적인 공황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에 가서야 비로소 국립 금융기관에 영업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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