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언제 부터 인가 기다림과 그리움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 들었지만 밀어 내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품지도 않으며 그런가 보다 하면서 못본체 하기도 하고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아는체 해주기도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언제 부터 인가 한국에서 43년, 미국에서 40년을 잃어버렸다는 허기가 밀려 들면서 그 텅 빈 자리가 남긴 여운과 상실 감의 실체가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처럼 불쑥 불쑥 들이 밀곤 했지만, 명분도 이름표도 없는 빈 자리들이 때로는 애증으로 느껴지기도 했었고, 오히려 나를 직시할 수 있는 영양가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었다. 꽃들도 꽃이 필 때를 알고, 꽃이 스러질 때를 알고는 나직이 꽃대를 수그린다. 불확실한 미래의 밑그림이 나를 다시 추스를 수 있는 기회로 삼게해주었던 것도 이제금 생각해보면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으로 재 탄생시켜 왔던 것도 행운이었다.
언제 부터 인가 날마다 기다림을 향한, 그리움을 향한 은밀한 밀어들이 실소를 던지며 보채는 일이 수그러 들면서 이제금은 고요하기만 하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마음이 바쁘다고 서둘다 보면 후에 수습하는 시간들은 몇배의 수고를 요구하기도하고, 서둘러야 할 일을 미루게 되면 시기를 놓치게 되는터라 하고 싶어도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일이며, 일상의 작은 일 앞에서도 깨어있어야 한다는, 끊임 없이 마음을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는 일 앞에서는 언제나 숙연 해지곤 했었다. 존재적 삶을 남긴다는 것, 그 마무리가 초라하지 않도록,서둘지 않는 삶, 본이 되는 삶을 살았는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족적을 그려냈는가. 언제 부터 인가, 너무 부지런하게 움직인건 아니었던가. 게으름이 깊어지지는 않았던가.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는 다 움직여야 할 때가 있고 게으름도 한 번쯤 부려도 된다는 은밀한 진리같지 않은 진리를 붙들 때도 있었기에 이즈음 며칠 간의 일상이 살아온 생애의 응축된 일면처럼 느껴진다. 궂은 일기가 게속 되면서 삭신이 편치않은 탓도있겠지만, 어쩌면 인생도 이렇듯 흘러가고 흘러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은 날들의 시간을 서두르거나 게으름을 함부로 부린다 거나, 부족한 부분을 위해 어디서 융자 받듯 빌린 다거나, 미리 미리 저축해 둘 수도 없음을 다 알고 있다며, 이미 깨달은 바라고 너스레를 부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뒤숭숭 하면 할수록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무엇이 여전히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적극적인 행위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조 사이에서 길을 잃게되는 세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들이 가꾸어가야 할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 새대는 장년 세대가 보듬어야 할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고, 노년 세대는 노년 세대가 남기고 가야할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개인의 행복도 세상의 평화도 인간이 제대로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연약 함을 정확하게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야가 열려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방인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세월에 비례해 가며 세간도, 이런저런 도구도 늘어난 터라 언제 부터 인가 마련하는 일은 멈추고 나누고 정리하고 버리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언제 부터 인가 사람도, 풍경도, 마을에 있는 공원 호수도, 캠퍼스 풍경 속에서 머물고, 하늘이 푸른 것도 숲이 우거진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공원을 산책하던 일도, 깊은 밤, 달 빛을 만나려 창을 열어보는 일도, 언제 부터 인가 이사를 가버린 이웃 집 같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쁨에 들 떠있던 시간도, 아침마다 창 밖에 머물러 있었던 풍경도, 예기치 않았던 좌절의 자리를 버리고 홀연히 일어섰던 시간도, 휠체어에 앉아서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시간도, 돐 지난 아이처럼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의 부끄러운 기쁨이 요동 치던 시간들이며. 이 모두를 언제 부터 인가, 단편소설 소재로 옮기려는 시도가 시지프스 신화처럼 꿈 꾸기 만을 하고있다
이 모든 시간과 일들이 내 생애를 거미줄 처럼 엮어 놓고있다. 연결되지 않는 삶은 없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듯, 연결될 것이 없는 사람은 절름발이 인생이다. 무엇이 될 것인가를 깊은 상념으로 풀어내며,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은 사랑임을 언제 부터 인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세상 모든 만사는 '언제 부터 인가'에서 시작된 것이다. 언제 부터 인가는 역사와 함께 영원히 흘러갈 것이다. 언제 부터 인가 감지하지 못한 그날 부터, 알지 못할 그날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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