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칠십 대 초반의 한 할머니가 남편을 여의었다. 지금까지 전기요금 내는 일조차 손수 해본 적이 없던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남편의 묘소를 찾아 "나는 어떡하라고" 하며 통곡했다. 그러기를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여느 날처럼 남편의 묘 앞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는 할머니의 귀에 갑자기 호통 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특무상사로 근무했던 남편은 생전에도 목소리가 크기로 유명했는데, 그날은 공원묘지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다시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새 십칠 년이 흘렀다. 그렇게 홀로된 분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나의 일터다. 이곳에서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나이와 성씨와 고향이 모두 달라도, 한 지붕 아래서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함께 살아간다. 자식들에게 신세 지기 싫어서, 혹은 배우자를 잃은 후 혼자 살기 적적해서 찾아온 분들이지만, 어찌 되었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곳이다.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나는 가끔 과분한 대우를 받곤 한다. 사람들은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랑 유전자를 타고나 희생과 봉사를 실천하는 줄 알고 정성스레 위로를 건넨다. 그럴 때면 내 엉큼한 소갈딱지가 들통 날까 봐 속이 뜨끔해진다. 덕분에 '내가 정말 이 일이 좋아서 하는 걸까, 아니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일까' 하며 내 양심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느 해 명절, 양로원에 위문하러 왔던 어느 교회의 권사님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휴, 어쩌다 이런 곳에 살게 되셨어요. 얼마나 외로우세요!" 눈시울까지 붉히며 위로하는 그분의 표정은 마치 자신의 말에 동조하라는 강요처럼 느껴졌다. 무안해진 할머니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그분들이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에요"라며 등을 툭툭 쳤다. 위로랍시고 던진 말에 기분이 언짢아 졌던 할머니는 "이런 곳이라니, 괜히 찾아와서 우리를 죄인 취급한다."라며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하라고 뿔을 내셨다.
마음이 예민하고 여린 분들에게는 애정 없는 동정이나 겉치레뿐인 위로가 도리어 독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내 감정에 휩쓸려 섣부른 연민을 베풀지 않으려고 늘 마음을 다잡는다. 때로는 뜨거운 감정보다, 담담한 평정심으로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서 매일 일상을 나누다 보니, 작은 표정 변화 하나에도 서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슬픔이나 회한을 남에게 쉽게 들키려 하지 않는다. 지금의 삶이 결국 스스로 걸어온 자취임을 알기에 원망의 화살을 타인에게 돌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가슴에 묻어둔 세월의 궤적을 마주할 때면, 목이 메도록 아득한 슬픔이 밀려오다가도, 때로는 그 기막힌 생의 풍파 앞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함께 마음을 달래곤 한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나이듦’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그리고 타인에게 허튼 동정을 받을 때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가족의 품을 떠나 살아야 하는 외로움과 혼자서는 일상을 온전히 꾸려가지 못하는 삶의 처연함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마음에 대고, 그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섣불리 말한다면 그것이 과연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선심 쓰듯 툭 내뱉는 말은 아무리 아름다운 단어로 포장할지라도 결코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지 못한다. 진정성이 결여된 위로는 먹다 버린 눈깔사탕보다 못한 허망한 울림일 뿐이다. 진심의 무게는 말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조심스러운 시선에서 온다. 그러므로 타인의 아픔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이다. 그 고요한 동행 속에서 비로소 참다운 위로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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