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우리 집에는 독특한 사육법이 하나 존재한다. 지시어가 명확해야만 간신히 움직이는 로봇, 혹은 수동태 인간을 가동하는 방법이다. 내 남편은 자타공인 ‘똥손’이다. 오죽하면 벽에 못을 박으라고 하면 제 손톱을 박아 피를 보는 인간이다. 무언가를 스스로 기획하거나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공사판 십장처럼 내가 지시하지 않으면 그저 집안의 붙박이 가구처럼 고요하고 조용하다.
그런데 이 수동태 인간에게도 기적 같은 반전 효능이 있다. 바로 결벽에 가까운 청결함이다. 집안이 조금이라도 지저분하면 눈에 가시가 돋는지, 남편은 곧바로 빗자루와 걸레를 든다. 쓸고, 닦고, 광을 낸다.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이 청소 시간이다. 매일 십장 노릇 하느라 목이 쉰 나로서는 이보다 더 고마운 인생의 보너스가 없다.
사실 나는 이 남자의 수동태와 청결 강박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해 먹는 편이다. 덫을 놓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남편이 지나갈 때 들으라는 듯 툭, 혼잣말을 던지면 된다.
“저쪽 구석 빈방에 새로 페인팅을 할까 했는데, 쌓인 먼지가 장난이 아니네.”
여우 마누라의 계략은 이번에도 백 퍼센트 명중이었다. 몇 년간 비워둔 방을 들여다본 남편은 먼지를 털고 닦으며 법석을 떨더니, 급기야 벽에 새로 페인팅을 해야겠다며 스스로 팔을 걷어붙였다.
구석구석 테이프를 붙인 후, 페인팅을 시작했다. 롤러를 굴리고 붓질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초보 일꾼이었지만, 일이 끝난 후, 환하게 웃는 남편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감돌았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투덜거림 하나 없이 일을 해 주니, 내 입장에선 부려 먹는 맛이 쏠쏠할 수밖에 없다. 큰 거사를 치르고 나면 나는 늘 주머니를 열어 얼마간의 ‘수고비’를 챙겨 준다. 일종의 성과급이자 다음 노동을 위한 자발적 유인책인 셈이다.
그의 순수한 만족감을 보고 있자면, 평소 속 터지던 마음도 눈 녹듯 슬그머니 가라앉는다. 오늘도 청소와 페인트 대공사를 완벽하게 마친 남편의 수고에 기분 좋게 성과급을 지급할 타이밍이었다. 나는 지갑을 열며 짐짓 물었다. “여보, 큰일 했어. 내가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얼마를 드릴 깝쇼?” 예전처럼 그저 내가 주는 대로 허허롭게 웃고 말겠지 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집히는 대로 줘. 당신 손이 얼마나 큰가 한번 보자.”
잽을 날리듯 툭 던진 그 대답에 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빵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전에는 말귀도 어두운 것 같고, 내 입이 떨어져야 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세상 둔한 사람이었는데, 은퇴를 하고 나더니 돈에 뭐가 씌었나? 돈 앞에서 어쩌면 이렇게 찰나의 재치를 발휘하는지 참 신기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그런 얄팍한 도발에 넘어갈 허술한 고용주가 아니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갑에서 정확히 '딱 200불'을 꺼내 들었다. 철저히 시장 단가보다 낮게 책정된 금액이다. 내 속내를 읊조리자면 이렇다. '이보시게 남편, 여기서 돈을 더 줄 거였으면 내가 프로 기술자를 불렀지, 왜 당신을 시켰겠나? 아무리 고생했어도 솜씨는 프로를 못 따라가는 법이고, 무엇보다 처음에 버릇을 잘못 들이면 다음 공사 때 단가가 올라가 마누라 골치가 아파진다.'
그리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는 빙그레 웃으며 뒷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었다. 사실 내가 살면서 남편에게 진짜로 감탄하는 점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평소 내가 무슨 일을 벌이든, 무슨 황당한 짓을 하던 남편은 방관인 듯, 혹은 무조건적인 복종인 듯 허허실실 다 받아준다. 내가 야박하게 낮은 단가를 책정해도 그저 웃어넘기는 그 대인배 같은 태도를 보고 있자면, 나보다는 남편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매사 잔머리를 굴리는 나와 달리, 절대 내가 가질 수 없는 저 방관과 포용이야말로 진짜 남편만의 깊은 내공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인생은 참 공평한 것 같다. 매사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내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음 폭탄을 던지는 이 수동태 인간 덕분에 내 삶의 긴장이 풀린다. 그래, 인정한다. 우리 집의 평화는 그저 빙그레 웃어주는 남편의 무조건적인 복종, 그리고 가끔씩 툭 던지는 개그 한 자락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절대 큰손이 될 수는 없다. 나는 남편 머리 위에 앉은 마누라니까. 다음번엔 또 어떤 혼잣말로 저 거대한 내공의 사나이를 부려먹을까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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