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이국으로 떠나와 있다는 핑계로 좀 더 안아 드리지 못했고 산다는 것에 짓눌려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는 아스라한 아픔이 되살아 난다. 어머니라는 보호막이 만든 고운 색상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은 늘 안전한 세상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낯선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고국에 내 어머니가 계셨기에 평화롭고 안전했다. 은발의 할머니가 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시다. 밤새 내린 하얀 눈 밭 위로 이른 새벽 길에 발자국을 새기 듯 길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 인생의 새벽길에서 어디서부터 첫발을 내밀어야 할지를 모를 자식들을 위해 처연하게 첫 발자국을 이정표로 세워 주시기 위해 첫 길을 내시며 안전한 길을 열어 주셨기에 그 길 따라 우리 남매들이 걸어온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도 연연한 그리움으로 남아 일상 중에서도 절절하게 와 닿곤 한다. 엄마와 딸로 함께했던 따스했던 순간들, 엄마 곁에서 맴돌며 보냈던 삶의 향기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음식과 엮여 있는 수 많은 에피소드와 어머니 내음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맏딸 자리에서 못다 보답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이 아련함으로 깊은 흉터처럼 남겨져 있다. 온통 보호막으로 존재해 주셨던 무너짐 없는 성이셨다. 항상 다사로움과 밝음으로 가득한 꿈 같은 성에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게 해 주셨던 어머니를 만나 뵙고 싶을 때면 언제나 사진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음을 통탄하는 어리석은 딸일 수 밖에 없는 실체가 부끄럽다.
세상 누구도 어머니의 품속에서는 세상에서 무서워할 것도 없는 왕자였고 공주였을 것이다.
어느덧 은발의 할머니가 된 딸은 “더 잘해 드릴 걸” 반복되는 중얼거림으로 후회의 자책을 번복하고 있다. 수시로 타일러 주셨던 가르침의 조언들이 나이 든 딸의 가슴 깊은 곳에 아직도 남아 삶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기에 어머니께서 남기신 잔영과 남기신 자국과 흔적을 지금껏 오래도록 기리게 되나보다. 해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단순한 외로움이 빚어낸 아림을 넘어 오늘 까지 딸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요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어머니 사랑을, 지극하신 사랑의 참 뜻을 기억 첫 장에,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깊게 심어 주신 어머니. 세상과 마주하며 처음으로 입에서 나온 언어가 ‘엄마’ 였음도 우발적이거나 우연의 일치나 뜻 밖의 요행도 아닌 필연의 발성이었음을. 엄마를 부르다가 어머니를 외치게 되면서 우리는 인간 임을 깨달음 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기에 무시로 어머니를 찾고 기쁠 때도 어머니를 먼저 입에 올리게 되고 슬플 때도 즐거울 때도, 몸이 괴로움에 처했을 때도, 언제, 어디서나 어머니를 부르며 자라왔다. 어머니 품속에서는 세상에 무서워할 것도 없어지는 다사로움과 꿈이 피어나는 요람이었고,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준 생의 발상지요 근원지였음을.
지금도 글을 쓰다 머뭇거려질 때면 어머니 모습을 그려보고 들려주셨던 무수한 이야기 거리를 더듬곤 한다. 이제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와 나를 엄마라로 부르며 어느 새 불혹과, 지천명에 이른 2세들을 통해 꿈이 익어가고 있음을 본다. 덧 없는 물질이나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보편적 삶의 양식을 멀리하며 서로 이해하고 거침없이 품어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후손들의 삶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세월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내가 살아온 세상을 역시 살아가야 할 차세대를 위해 ‘살아가는 동안 좋은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는 순리의 소중함을 설득력 있는 고백으로 유고처럼 편지를 준비할 때가 아닌가 싶다. 5월 가정의 달 서곡은 세대를 이어 관통하는 할머니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쓰라 한다.
동요 ‘따오기’ 에는 내 어머니 가신 나라가 해 돋는 나라요, 달 돋는 나라요, 별 돋는 나라, 이다. 그 곳에서는 자유롭고, 남존여비가 없는 전인격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이기를.
지금, 내 어머니께서 영유하실 나라는 영원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나라여야만 할 것이다.
내 어머니의 한 없으신 사랑에 대한 보답은 어머니의 발 자국을 따르는 길일 터인데 노구의 아낙은 선명하지 못한 부끄러움 뿐이다. 고귀한 어머니의 사랑 내림을 고수하는 그 길만이 우리 네를 품어 오신 사랑의 다사로운 손길을 영원으로 이어가는 고귀한 유산으로 지켜가는 길 일 것이다. 어머니 모습을 재연하면서 살아가고 픈 노구의 아낙이 된 여식이 올려드리는 사랑의 고백이요, 마음을 다한 보답의 연서요, 어머니 나라에 곧 입성할 딸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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