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지난 밤 오래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과 어머님을 만나 뵈었다.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서도 항상 든든한 보루가 되어 주셨던 다사로운 두 분이 그리울 때가 많았는데 생시처럼 포근한 모습을 뵙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계단을 두 분의 모습을 닮아가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 따르듯 살아왔다. 이젠 가파른 계단이 호수와 초원이 보이는 여유로운 풍경 앞에 서 있다. 그리움 순간들이 과거로 달려가기도 하고 먼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만날 수 없는 부모님을 사진 속에서 부르며 현실인 양 가만히 사진을 안아 보는 것으로 그리움의 파도를 넘는다.
오 남매 중 남동생이 둘이었고 여동생이 둘이었는데 이젠 남동생도 하나로 여동생도 하나로 삼남매가 되어 큰 바다를 두고 연연한 그리움이란 파도를 일구며, 못다 나눈 정을 풀어낸다. 생의 마디에서 만나지곤 하겠지만 그렇게 그리움은 오래된 미래가 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의 마지막처럼 그리움의 파도는 쉬지 않고 철썩 대고 있다. 나이가 깊어 갈수록, 잊고 지낸 그리움이 사무치게 마음을 적신다. 가족이란 울타리는 하늘 만큼 넓은 품으로 존재해 왔기에 가족을 그리는 그리움은, 등불을 밝히고 밤을 세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움은 일상 곳곳에 드리워지며, 푸른 새벽에도 황홀한 황혼 녘에도 불쑥불쑥 찾아 든다.
담담하고 초연한 그리움이 있었기에,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차분하고 평온하게 낙엽처럼 바람에 휩쓸리며 흐트러지지 않으며 긴 삶을 걸어 올 수 있었으리라 . 마음 깊은 곳에 쌓여가는 그리움의 무게는 골이 깊어지고 메아리처럼 공명되기도 한다. 그리움의 시작은 사랑일 게다. 누군가 그리워지는 것은 미완의 연속이 완성이 아닌 계속 이어지는 연줄 같은 삶이라서 먼 하늘에 띄워진 연이 불러내는 그리움은 꿈 길에서도, 고운 풍경을 만났을 때도, 언덕이 가파를 때도 뜬금없이 예고 없이 찾아 들곤 한다. 완성되지 못한 관계로 남겨지고 전하지 못한 말과 마음이 생각 속에 남아있기 마련이라, 함께 하지 못한 애틋한 시간이 기억 줄을 흔들어 대고 그리움은 현재와 미래 속에 오래 머무르기도 하고 과거로 돌려보내기도 하면서 그리움 단조를 읊게 되나보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었던 일은 기적이 되어 남겨져 있는 것이다. 인생 끝자락에 이르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사람이 여전히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기적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이름이 된다는 것은 생애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젊은 날엔 과거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좋은 추억이 소중해지더라 는 것. 많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마음에 오롯이 남겨지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누군가의 기억에 남겨진다는 것은 그 사람 삶에 영향을 남겼다는 뜻일 게다. 아름다운 관계는 집착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에.
인생은 편도였다. 해서 그리움이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한 때는 그리움이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여긴 적도 있었지만 미래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기억은 과거에서 오지만 감정은 미래를 향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살아오는 동안 누군가에게 앞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삶이라면 잘 살아온 삶을 남길 것이다. 살아온 흔적이 기억에서 추억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리움도 나이를 먹어가고 노년에 당도한 어르신들은 나이들 수록 그리움이 더 깊어만 간다. 어떤 그리움은 점점 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선명하게 겹쳐지기도 하면서.
그리움의 파도가 언제나 잔잔하게 밀려오기를 바램 해본다. 서핑을 즐길 만큼의 파고가 아닌 사색에 잠길 만큼의 파도이기를. 그리움의 파고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움의 파도를 넘으며 끝내 전하지 못한 말, 더 잡아주지 못한 손길이며, 미처 나누지 못한 애틋한 눈빛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함께했던 시간 보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 들이 떠올라 눈 앞이 흐려지곤 한다. 세월을 건너온 노구의 길동무 모습들이 함께 늙어가는 따뜻함의 표징으로 포개 진다. 어디로부터 오는지 모를 막연한 그리움이지만 그 거리감을 받아들이며 더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기로 하자. 감성에 치우치지 않으며 이성적 균형을 지켜가면서. 그리움은 또 다른 이름의 사랑임을 일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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