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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흐르는 것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4-17 10: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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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정자(시인 수필가)        

 

한 낮 기온이 여름으로 들어선 것 같은 한나절, 처타후치 강변을 찾았다. 강줄기는 넓은 강폭 따라 잔잔한 물결을 일구며 흘러가고 있다. 강 자락 따라 어우러진 숲이라서 그런지 잎새도 윤기가 달라 보인다. 나무 껍질 결도 고르고 곱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세상과 맞짱 떠보려는 것 보다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껴안아 보자는 심산으로 생을 그렇게 흐르듯 맡겨 보기로 했던 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살아온 생은 흡사 아무것도 흔적 조차 없는 것이나 진배 없음이요,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이었던 것을. 강 줄기 물 빛이 하도 맑아 강 기슭 흐름을 속절없이 바라본다. 꾸밈없는 무구한 물의 흐름에 마음을 뺏긴다. 강 폭 한가운데 작은 바위 위에 옹기종기 청둥오리류의 오리들이 모여 있다. 유속이 빠른 강폭인데 강을 가로질러 건너려는 듯 몇 마리 오리를 남겨둔 채 풍덩 강으로 뛰어든다. 

 

유속이 빠른 강줄기를 건너지 못하는 마음들이 섬이 되고 ‘군중 속의 고독’ 군상으로 고립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듯 하다. 섬에 고립된 단절로 스스로 갇히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밀어내고 평등을 운운하며 흘러가는 인간 군상이 오버랩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강이 흐르고 있었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강이 있어 사람을 섬으로 만들기도 하겠구나. 하기야 여러 해를 보아왔어도 낯선 이가 있는가 하면 만나는 순간 마치 여러 해 묵은 정이 있었던 것 같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때로는 짧은 담소 밖에 나눈 것이 없는데도, 말 없이도 같은 빛깔의 성정이 느껴지는, 따뜻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토닥임의 동질감이 친근감으로 유대감으로 까지 번지게 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었으니까. 서로가 나누는 진실이란 것. 상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정교하도록 고상함을 합리화로 가장한 모습까지도 아우르며 간과할 수 있는 심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진실의 심중을 한 눈에 알아 보기라도 하는 걸까. 

 

구비구비 흐르다 수심이 얕고 폭이 좁아 물살이 빨라지는 여울목을 만나면 강줄기 마저도 휘돌아 가기도 하듯, 우리네 인생도 삶에 몸을 싣다 보면 여상 스럽던 일상 흐름이 미세하게 서서히 선회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도 있고, 무언가 삶의 방향 키를 바꾸고 있음을 직감하게 도 된다. 운명이라 밀어붙이고 싶을 만큼 끈질기게 생을 밑바닥으로 끌어 들이려는 힘 앞에 버둥대며 버텨내면서도 그냥 끌려가 버릴까. 어떻게 해서라도 결연한 의지로 맞설 것인가 하는 갈등의 여울목에서 겨우 휘돌아 나오기도 한다. 가능한 테두리 안에서 단순하게 생을 건져내는 길을 택하는 동안 세상을 향한 문이 또 하나 피할 길을 만나게 해주었던 일들 또한 수 없이 만나면서 흘러왔다. 강물의 기나 긴 여정처럼.

 

흐르는 것은 감성적으로 정이나, 그리움, 사랑도 흐른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며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자는 위로의 의미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생명력과 따뜻함을 상징하거나, 자연 이치의 한계 안에서 시간이나 강물, 세월을 묘사하거나 시현으로 드러내기 도한다. 멈추지 않는 존재 근원을 구현하는 것으로 바람이나 햇살처럼, 흘러가도록 마냥 두는 마음 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것 같다. 흐르는 것은 따뜻한 온기가 담긴 생명 력을 지녔기에 다양한 형태로 흐르고 있었고 또 여상스레 흘러갈 것이다. 

생의 길목을 돌고 돌아 맴돌면서도 시간이 마냥 머물러 있다고 믿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들 살아간다. 인생길에서 만난 고난이 그랬던 것 같다. 세월 따라 계절 따라 흐르지 못하고 맴돌고 맴돌다 소용돌이 속으로 잠수하고 말았던 기억이 아픔으로 떠오른다. 무수한 헛걸음 질로 소용돌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것을. 지금의 내 삶이 지난 날의 내 선택들이 만든 결과일 것이요. 한 순간 선택이 미래를 결정 한다는 것까지. 인생은 단판으로 결정 되는 승부가 아닌 영원으로 이어지는 리그전인 것 같다. 해서 “최선을 다 했다’ 는 말을 남기게 되나보다. 강줄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앞서간 물결은 이미 보이지 않고 또 다른 흐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늦은 봄 날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물은 덤덤하게 예사로이. 무심한 듯 태연하게 흐르고 있다. 언재나이듯 흐르는 강물을 마주할 때 마다 겸허를 익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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