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내 인생에 대한 예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3-30 10:32:1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내 인생에 대한 예의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합리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배고픈 여우가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따려다 실패하자, “저 포도는 분명 실거야”라고 외치며 돌아서는 장면이다. 자신의 능력 부족이나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목표물에 결함이 있다는 구실을 만들어 자존심을 지키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어 기제다.

하지만 이어령 박사가 재해석한 현대판 ‘신포도’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기어코 그 포도를 따 먹은 여우가 타인의 부러운 시선 때문에 입안을 찌르는 신맛을 견디며 미소 짓다가, 결국 위궤양에 걸리고 만다는 설정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단맛’을 연기하느라 정작 자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남의 시선과 물질적 기준에 연연하며 자신을 소모하지 말고, 진정으로 선택해야 햐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가르침이다.

이 글을 접하고 처음에는 웃음을 터트렸으나, 이내 서늘한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고였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의 여우인가.’ 남들이 우러러보는 권세나 재물이 내 손에 닿지 않을 때, 그것을 당당히 ‘신포도’라 부르며 돌아설 용기가 내게는 있었는가? 혹여 체면과 겉치레라는 넝쿨 아래서 타인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정작 ‘나’라는 고유한 존재를 잃고 있던 것은 아닐까?

인생은 흔히 죽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비교의 과정이라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공장에서 틀에 맞춰 찍어내는 기성품이 아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저마다의 결을 지닌 유일한 존재다. 광활한 우주 속에 단 하나뿐인 내가 사라진 세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한 번뿐인 생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근사해질 권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내야 하는 엄중한 의무가 있다.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은 생애 전체를 통틀어 행복했던 날이 단 6일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반면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헬렌 켈러는 “내 생에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라고 고백했다. 결국 행복이란 객관적인 성취나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내면의 시선에 달려 있음이 명백하다. 

물론 본능적인 욕심을 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스스로를 절제하지 않으면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높이 오르고 싶은 욕망이 시시때때로 고개를 든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길러내는 옹달샘과 같다. 고요한 밤을 무사히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떠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음에 감격하는 태도. 그렇게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마음의 평온을 누리는 것이 행복의 실체라고 믿는다.

흔히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아마도 삶의 신포도를 억지로 삼키지 않아도 되는 지혜를 체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오직 내가 즐거운 일을 도모하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부족함마저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태도. 행복은 그것을 찾으려 사방을 헤매는 사람보다, 이미 곁에 와 있는 소소한 기쁨의 씨앗을 발견하는 사람의 뜰에서 더 무성하게 자라기 마련이다.

세상이 보내는 박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가슴속에서 뛰는 내 심장의 박동 소리에 집중해 본다. 입안을 헐게 만들었던 가짜 단맛들을 과감히 뱉어내고, 내 마음의 밭에 나만의 씨앗을 심고 싶다. 비록 그 열매가 남들이 보기엔 작고 투박할지라도,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온전하고 진실한 단맛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단 한 번뿐인 ‘나’라는 인생에 대한 가장 예의 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어른  다움의 서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은 내 보이기 싫은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과 동의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름살, 흰머리, 아집, 애착이 은근히 자리 잡기 시작하

[신앙칼럼] 다볼산의 기적 예수 (The Miracle of Mount Tabor, Jesus : 마태복음Matthew 17:1~1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1. [도입] 붉은 흙 위에 울리는 나지막한 음성앨라배마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버려진 돌조각들로 평생 기도의 정원(아베 마리아 그로토)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삶의 균형을 찾는 지혜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삶의 균형을 찾는 지혜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삶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앞서 삶의 모든 영역에 불균형으로 질서가 없음을 경험한다. 인간관계의 불협화음에서 파생되는 무질서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9)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9)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과다지급금 회수, 당신의 ‘작은 실수’를 대하는 쇼셜시큐리티의 변화” 천경태 (금융전문가)  공식 발표일: 2026년 5월 11일 (자료 출처: SSA 감사

[삶과 생각]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
[삶과 생각]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에모리 의과대학 종신 명예교수이자 소아암 전문 의학박사인 문학평론가 아혜 김태형 시인의 글을 읽고 고약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밤의 이야기

조병화 고독하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삶이 남아 있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그리움

[수필]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
[수필]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칠십 대 초반의 한 할머니가 남편을 여의었다. 지금까지 전기요금 내는 일조차 손수 해본 적이 없던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남편의 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의 Personal Property란 무엇인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의 Personal Property란 무엇인가?

최선호 보험전문인 ‘세간살이’라는 말은 집안에서 사용하는 온갖 물건을 뜻한다. 냉장고, 세탁기, 소파, 침대, TV 같은 큰 물건부터 옷, 그릇, 컴퓨터, 전자제품까지 모두 포함된

[애틀랜타 칼럼] 용서의 힘

이용희 목사 “너의 원수로 인하여 난로의 불을 뜨겁게 지피지 말라. 오히려 그 불이 너 자신을 불태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입니다.분노하는 사람은 그 분노로 인하여 자신을 잃을

[박영권의 CPA코너] 투자금인가, 빌려준 돈인가?(세법과 회계 기준에서 바라본 동업 자금의 성격)
[박영권의 CPA코너] 투자금인가, 빌려준 돈인가?(세법과 회계 기준에서 바라본 동업 자금의 성격)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지인끼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계약서 없이 자금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업이 예상과 달리 진행되거나 상황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