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9-29 10:37:1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하라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더니 결국 탈이 났다. 갑상샘 기능 저하로 불어난 체중을 줄여보려고 걷기 운동을 무리하게 계속했던 탓이었다. 다행히 엑스레이 상으론 별 이상이 없다니, 불편함이 조금 나아질 때까지는 한동안 쉬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거의 5년 만에 다시 수영을 하려니 호흡이 달렸다. 풀장 벽에 기대 쉬기를 여러 번 하다가 옆 라인에서 헤엄치던 한 여성과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비슷한 연배의 한국 아줌마였다. 늦은 시간에 수영하러 온 이유를 묻기에, 먹고살다 보니 이 시간에야 겨우 짬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나이든 여자가 아직도 일하는 것이 딱하다는 표정이었다. 놀랍다는 말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 내용인즉 그녀는 '공직자 출신 남편과 박사 아들을 가진, 평생 한 번도 일 해본 적 없다는 강남 출신 여사님이란 소리였다.

강남 사람은 부자라는 등식을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알았다. '강남 바람'이 불기 전에 한국을 떠났던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외아들이 박사 학위를 딴 후 '박사님'이라고 부르고 싶어 일부러 매일 아들에게 전화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머니의 행복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것도 잠시, 며느리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녀의 입에서는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좋은 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며, 아무리 가르쳐도 좀처럼 변하는 게 없으니 속상해서 참기 힘들다는 며느리 험담이었다.

잠시 호감을 가졌던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역시 화가 담긴 말은 파편과 같아서 본인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껄끄럽게 만든다. "저는 며느리와 함께 살지 않아서 잘 몰라요" 하고 멀어지려는데, 그녀가 내 뒤통수를 향해서 재빠르게 말했다. "자기는 수영하는 방법이 틀린 것 같아. 예쁘게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팔을 쭉쭉 뽑아대니까 속도가 안 나는 거야." 

내 수영 모습이 그녀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나?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내 무릎 건강이 우선이지. 삼십분 동안 수영 하면서. 생각해 보니, 오른쪽 어깨에 오십 견이 왔을 때 고쳐보려고 나름 고안했던 자유형에서 팔 움직임이 몸에 배어버린 것 같았다. 조금 전 옆 라인에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개헤엄 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왔지만, 어쩌겠나. 내 수영 자세를 스스로 볼 수 없으니 지적해 주는 그녀를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風)이라 하라'는 우화가 있다. 남보다 짧은 혀를 가진 탓에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없는 서당 선생이 “‘바람 풍’ 한자를 가르치면서 '바담 풍'이라고 했다. 선생이 '바담 풍' 하니 아이들도 따라서 '바담 풍' 했다. 애가 탄 선생이 아이들에게 다시 말했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희는 '바람 풍'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잘 따라 해 보거라. 자, 바담 풍!" 학생들은 일제히 "바담 풍!" 하고 그대로 따라 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남에게는 올바르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여준다. 이 우화를 책에서 읽었을 때, 자식을 아무리 잘 가르치려 해도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그러했다. 비록 내가 호의를 베풀어도 상대의 마음과 통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남에게서 '바람 풍'을 기대하기에 앞서, 나의 '바담 풍'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혀 짧은 선생처럼, 나는 '바담 풍'을 내뱉으면서 타인에게는 '바람 풍'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릇된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무감각해 지면, 결국 그릇된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쩌면 나조차도 깨닫지 못한 채 잘못된 길을 가면서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길을 가라고 외치지는 않았을까.

내가 먼저 바른 본을 보이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니 이제는 누군가에게 '바람 풍'을 요구하기 전에, 내 입으로 내뱉는 '바담 풍'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오직 나부터 '바람 풍'을 정확히 발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의 작은 바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불어갈 수 있으리라.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바담 풍'을 외쳤을까.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추억의 아름다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수필〉우리에게 불행해질 권리는 없다
〈수필〉우리에게 불행해질 권리는 없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삶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암'이라는 날 선 선고를 받던 그날, 나는 텅 빈 머릿속을 떠다니던 죽음의 공포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65세 미만 장애로 메디케어에 들어간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65세 미만 장애로 메디케어에 들어간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들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는 보통 65세가 되면 가입하는 연방 건강보험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65세 미만이라도 장애(Disability) 판정을 받고 SSDI(Social

[허니웨이 건강 칼럼] 프로폴리스편 3회- “아이도 괜찮을까요?”
[허니웨이 건강 칼럼] 프로폴리스편 3회- “아이도 괜찮을까요?”

온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폴리스 사용법 프로폴리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아이도 먹어도 되나요?”입니다.가족 모두가 건강을 챙기고 싶은 마음,그 마

[애틀랜타 칼럼] 건전한 불만은 세상을 이끄는 힘

이용희 목사 우리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한 그 일에서 만족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연스럽게 일에 적응하고 자신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만족이란 자신

[내 마음의 시] 영수는 눈먼 영희를
[내 마음의 시] 영수는 눈먼 영희를

월우 장붕익(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비밀 언덕으로어깨를 기대며서로 힘을 얻는다 버팀목으로묵묵히 견디어 낸다 대들보로세월의 무게에도휘어지지 않는다 뼈대있는 가문으로가족을 지킨다 앞

[빛의 가장자리] 얼음위의 고양이들

갑작스러운 한파로 얼어붙은 뒷마당에서 저자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그들의 고단한 삶을 지켜본다. 따뜻한 집 안에서 보호받는 반려견과 대비되는 들고양이들의 처지를 통해 생존의 엄숙함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전하며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담았다.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이민자 삶의 역경을 이기는 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이민자 삶의 역경을 이기는 힘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지금 이민자 삶이 위기에 처한 그 어느 때보다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다.한겨울의 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에 망연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행복한 아침]  진위 여부, 거짓과 진실

김 정자(시인 수필가)   무슨 일이든 양쪽 말은 다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여부를 부풀려서 궁지로 몰아 넣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 저들의 전례 없는 말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이민자 삶의 역경을 이기는 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이민자 삶의 역경을 이기는 힘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지금 이민자 삶이 위기에 처한 그 어느 때보다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싶다.한겨울의 바람 부는 황량한 벌판에 망연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