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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사진의 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9-26 08: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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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자(시인 수필가)    

 

책상 정리를 하다가 사진 한 장이 책갈피에서 포르르 떨어진다. 까마득한 옛 사진이다. 여고 동창 둘이 독일에서 만난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셋이서 곧잘 어울렸는데 나는 한국에 남고 둘은 각자 유학을 떠난 것인데 독일에서 만났단다. 시간이 빠져나간 흔적이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인화된 사각 종이가 세월 만큼 낡아 보인다. 그 시절이 담겨있는 여고 앨범을 꺼내 본다. 이름이 아물아물한 친구, 이름만 겨우 남겨놓고 기억에서 지워진 동창들, 함께한 시간 들이 성큼 곁으로 다가온 듯 지난 세월 모퉁이를 방금 돌아 나온 듯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 도 만난다. 가슴에 빈 방이 여럿 있었나 보다. 다 불러 모아 함께 지내고 싶어 진다.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 흰 모래사장이 배경이 된 사진도 있다. 조금은 촌스러운 차림 같은데 제 딴 에는 세상없이 멋지게 차려 입고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폼 부리고 찍은 사진도 있다. 흑백 사진을 모아둔 상자도 열어 옛 시간을 들추어 본다. 이런 저런 결혼식 사진 속엔 몇 십년을 만나지 못한 친척들을 만나기도 하고, 색이 바랜 사진 속에서 세상을 떠나신 이들도 만나게 된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다 문득 이 가을이 다하기 전에 노란 들국화 곁에 선 은발의 할머니 사진을 앨범 속에 갖추고 싶어 진다. 어린 시절, 사진 찍는 순간이 어색해서 울고 싶었지만 겨우 웃고 찍은 사진은 아직 웃음을 띠고 있다. 화단 앞에서 찍은 사진 속, 꽃은 아직 한 번도 시들거나 낙화한 적이 없다. 푸른 잎은 더 이상 낙엽으로 지지 않는다. 

이따금씩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을 피하고 싶을 때, 잡다하게 거슬리는 생각들이 밀려들 때면 가족 앨범을 펴 보곤 한다. 사진에 집중되지 않는 마음을 붙들어 앉혀놓고 자문해 본다. 도피로서의 앨범 열기는 정신 건강에 좋은가 나쁜가. 복잡하게 따지고 들면 손쉬운 답을 얻을 수 있는 물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정답은 무조건 좋다 쪽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 나를 어둡게 만드는 생각은 우선 피하고 보는 게 옳다는 견해로 밀어 붙인다. 우선 거리를 두다 보면 강력하게 밀려들던 그 무언 가도 일단락 힘이 줄어든다. 최면 걸리듯 사진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시작이 반이 되고 앨범 속으로 마음이 비집고 들어가 있곤 했었다. 옛 사진에 전도된 심미안적 후일담이다. 사진의 힘일 게다. 

사진은 빛으로 빚는 예술이다. 빛과 시간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삶의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현실의 끝 이자 상상의 시작으로, 기록의 도구이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다. 사진의 어원은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빛을 이용해 만든 영상 즉 ‘빛(photo)과 그리다’(graph) 합성어로 빛을 그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렌즈가 부착된 전화기를 만나고부터는 어설픈 사진작가 노릇을 해오고 있다. 무료하거나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가 아니라 오다가다 진풍경을 만나게 되면 자동 발생 적으로 카메라에 담게 된다. 다 방면으로 각을 잡느라 부산을 피우지만 아직은 신통치 않다. 사진 프레임 속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방금 찍은 것인데 지난 날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 을 만난 적도 적지 않다. 사진을 찍으며 만나지는 옛 그림자는 그저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더 깊고 생생하게 눈 앞에 선명히 그려 지곤 한다. 연상 작용까지 더해지면 마치 그 옛날로 돌아간 듯 주변의 소음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환영 같은 영상이 펼쳐지곤 한다. 완전 득템 이다. 사진의 힘으로 믿어주고 싶다. 

가끔 자신을 스스로 터부시 하게 되는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려 할 때면 유년 시절 사진을 꺼내 보며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곤 한다. 잠깐의 찰나 속으로 들어가 잠시 나마 스스로를 빛난 존재로 인정 받고 싶음을 감출 수 없음이라서 

뜬금없는 발광체가 되어보곤 한다. 볼품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불어 오는 바람결에 실리듯 힘든 시간을 가볍게 넘어설 때도 있다. 사진의 힘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이십 여년 전에 마련한 대형 가족사진이 자리잡고있다. 순간으로 멈춰 버린 아득한 시간이 고여 있다. 더 나이 들지 않은, 맑고 선한 생애의 숨결이 고스란히 고여 있다. 해가 담겨있고, 달과 별이 담겨있고, 우주가 깃들어 있다. 창 밖으로 하루를 다한 노을 잔상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밀려 들어와 사진 속의 예술 혼을 촉발시키듯 빈 둥지를 충만하게 채워주고 있다. 흔치 않은 찰나의 묘미에 젖어들 수 있는 것도 사진의 힘으로 인정해 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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