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외롭다는 감정을 감추려고 눌러 오느라 애쓰시다가 주변을 의식한 나머지 최근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는 지인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외롭다는 감정을 혼자 독불장군처럼 감당해 내다가 더 큰 마음 병을 얻게 되었단다. 실은 외롭다고 드러내는 것을 결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라 외롭다고 말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건강한 자아구성의 출발점으로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며 굳이 숨길 만큼 잘 못된 감정도 아님을 강조해 드렸더니 대뜸, “살아 오면서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으셨어요 ”라는 반문을 받게 되었다. 일상을 바쁘게 보내는 편이라 하루가 36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느라 외로움을 느끼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는 답변을 드리면서, 아차 동병상련 감정을 갖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뒤 늦은 깨달음이 마음을 헤집는다. 그랬던 것 같다. 혼자의 시간이나 공간을 즐겼던 것 같다. 고독을 친구로 삼을 만큼은 아니지만 고요하고 잠잠한 적요의 적적미에 젖어 드는 넉넉함에 흡족해 하면서 생각들을 가지런히 모으기도 하고 분류해 보기도 하면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터라 외로움과는 거리가 있는 시간에 심취하곤 했었다.
‘인간은 어차피 원래 외로운 존재 ‘라는 논리를 인정하며 주어진 상황을 누리며 살아가는 편이라고 솔직히 말씀드렸지만 생각 차이를 좁히기에는 살아 온 환경이나 개인 성향 차이가 있음을 인정 하자고 결론을 매듭 지으려 하자 ‘이미 외롭다는 얘기로 마음열기를 해버렸기에 외로울 땐 기댈 수 있을 것 같은 위안을 얻었다’ 는 말에 도리어 위안을 얻게 되었다. 외로움은 그 누구도 어르고 달래서 해결해줄 수 없음이다. 누구나 내면에 한 자락 깔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그러나 외로움에 실려 휘청거리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외로움의 노예가 되어 귀한 생을 유폐 시키기엔 생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지금의 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해서 외로워 하는 이들에게 무언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외로워 한다고 치부하는 것은 사회적, 심리적 편견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시한이나 경계 없는 불문곡직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들이 언제 가장 외로워 질까.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거나 버림을 받았을 때. 가족을 우선시 해오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외로움과 맞닥뜨리는 경우, 신의를 지켜왔던 친구, 지인들로부터 마주치기를 꺼려하거나 이유 없는 외면으로 도외시 하는 태도로 기피하고 있음을 자각 했을 때, 모욕적인 발언에 노출되면서 깊은 외로움 심연에 빠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밀려드는 공허감이 허무를 불러들이고 삶의 무의미함이 예측하지 못했던 외로운 순간으로 살아가는 모퉁이에서 셀 수 없이 만나게 된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초록 숲에서 조락하는 잎새를 만나도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자기 관리를 잘해내는 사람은 외로움을 즐길 줄도 안다. 이들의 삶은 늘 활기찬 환희가 곁들여져 있다. 비결은 무언 가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던져 성과물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은 외로움이 자리할 틈이 없다.
고독을 사색과 자신을 세워가는 일로 소모한다면 그리 문제점은 없겠지만, 수시로 외로움을 붙들고 몸부림 친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 아닐까. 외로움이 파도처럼 넘실댄다면 상황을 바꾸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이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도시 전체에 뿌리 내린 외로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감기처럼 외로움에 걸려있다는 뜻이 된다. 근원적인 외로움은 상황이나 주변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인데. 내면에서 생성되는 감정은 본인이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가족이나 친지, 연인관계는 외로움을 일시적으로 제어하거나 통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외로움 근원을 관리해야 하는 몫은 자신이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제 각각의 가면을 마련하게 된다. 소셜 미디어에 저장된 사람 숫자가 외롭지 않다는 가면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나눔 활동이나 봉사활동 참여로 외롭지 않으려는 시위로 해소하려는 삼투압 가면이 나타나기도 하고, 하루하루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데 외로울 틈이나 있으면 좋겠다는 일련의 일 중독 가면이 대두 되기도 한다. 외로움을 상쇄하려는 다양한 가면 등장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외로움을 숨기려 하거나 도망 치는 것은 나로부터 숨거나 도망치려는 것인데 그러한 행위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이다. 가면을 벗고 외로움을 직시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외로움의 뿌리를 들추어 보면 사람마다 다름을 보게 된다. 외로움은 돌발적인 기후현상이나 사건사고가 아니기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많은 경우 자신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한 부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라서 어쩌면 독서도 한가지 처방전이 될 수 있다는 귀 뜸을 드리게 된다. 외로움을 이열치열 해보는 것도 훌륭한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바빠서 외로울 틈이 없다는 엄살을 덮으려는 듯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인다. 그 바람자락 속에서 벌써 가을 냄새이 실려온 것 같다. 더위에서 벗어나듯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가을 내음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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