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절실하게 살아야 하는 까닭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6-23 09:37:39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절실하게 살아야 하는 까닭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저녁을 함께 하자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남편 기일이 곧 다가오는지라 행여 힘들진 않을까 서둘러 나갔다. 다행히 예상보다 침착한 모습이었다. 마주 앉은 그가 식탁 위로 슬며시 올려놓은 종이 가방 속엔 내 생일 선물이 들어 있었다. 그 남편의 기일 다음 날이 내 생일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다니, 

 

손으로 꾹 눌러야 할 만큼 가슴이 저릴 때가 있다. 절벽 끝에 홀로 선 것 같은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볼 때가 그렇다. "잘 다녀왔어?" 남편의 목소리가 사라진 집안 곳곳에 문신처럼 박힌 남편의 흔적들을 무엇으로 지우며 지냈을까? 저절로 눈이 떠진 햇살 맑은 아침, 침대 한 쪽 텅 빈 끝자락을 바라볼 때, 남편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만날 때, 가닥가닥 매듭 졌던 서글픔이 한꺼번에 풀려 버려 꺼이꺼이 목 놓아 운적은 없었는지. 

 

살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폭풍 때문에 낯선 곳으로 밀려가는 일이 생긴다. 특히 죽음은 우리네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폭풍이지만 늘 뒷전에 둔다. 지난 몇 해 동안에 세 명의 지인을 잃었다. 그의 남편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늘 가까이에서 나를 염려해주었던 사람들, 미래에도 함께 있을 거라 그냥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내 생애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의 가치가 새삼 달리 느껴진다.

 

속으로 말을 삼켰다. 절대 안정을 취한다고 상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무력감을 이겨내는 일이 어찌 짧은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으랴. 그래,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섣불리 위로할 수는 없다. 그건 섣부른 말 동냥일뿐이다. 겨우 새살이 차오르는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게 될 까봐 위로의 말도 조심스러웠다.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이 정말 약이 되면 좋겠다. 아프고 고된 삶이어도,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살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은 건 내 이기심일까? 삶의 길목에서 만나는 힘든 일을 혼자 겪어내는 그를 생각하면 내 가슴에도 돌무더기가 쌓인다.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면 절로 극복되는 것이 트라우마라는 데, 그가 빨리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결에 닥터 오피스에 모시고 갔던 할머니 생각을 했다. 차를 타고 내리는 게 힘드셨던지 "이렇게 힘든 데 더 살면 뭐하겠냐."고 속내에도 없는 불평을 하셨다. 평소에도 까다로운 할머니다. 조그만 증상에도 병원 응급실을 찾고, 뾰루지 하나에도 의사에게 당장 가야 한다고 채근하는 할머니다. 구 십 세가 훌쩍 넘은 사람도 장수를 바라며 사는 데,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구구 팔팔 이삼 사'라는 신조어는 아흔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 삼 일만 아프다가 죽자는 희망사항이다. 그렇다. 나 역시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다. 의학의 발달로 이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 않던가. 언젠가 친구에게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오래 살고 싶은데, 앞으로 살날은 점점 짧아지네.” 라고 했더니, 친구가 정색하며 말했다. " 혹시 천국 가서 누릴 영생을 이 세상에서 가불해서 살 수는 없을까?" 친구와 함께 배를 잡고 웃었었다.

 

인간사는 '생로사(生老死)'가 아니라 '생로병사'다. 병(病)이 들면, 시도 때도 없이 이별해야 하는 게 우리네 덧없는 인생살이다. 죽음과 맞서다 떠나간 사람들이 애끓게 갈구했을 그 생명, 그 삶을 영위하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절실하게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I-94 한 줄 뒤에 숨은 ‘새 감시 시대’

케빈 김 법무사 최근 한국 언론에 “무비자 I-94 정보 제출, 얼굴인식·소셜미디어·DNA까지 확대 검토”라는 제목이 등장하자, 많은 분들이 “미국 가려면 공항에서 DNA까지 채취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8] 구르는나무

이성열 사막을 가로질러 기어가듯이데굴데굴 구르는 나무를 보고비웃거나 손가락질하지 마어떤면에선 우리의 삶도거꾸러져 구르는 나무 같지짠물 항구도시 인천에서 태어나아버지를 따라 무논과

[행복한 아침]  겨울 안개

김 정자(시인 수필가)       이른 새벽. 안개에 둘러싸인 도심은 마치 산수화 여백처럼 단정한 침묵으로 말끔하고 단아하게 단장 되어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만상은 화선지에 색감을

[추억의 아름다운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全文)

만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

[한방 건강 칼럼] 불면증, 한방치료와 접지족욕(Groudning Foot Bath)의 시너지
[한방 건강 칼럼] 불면증, 한방치료와 접지족욕(Groudning Foot Bath)의 시너지

최희정 (동의한의원 원장) Q:  CJ, Maybe it does not work for me! I still sleep less than 6 hours!A:  Be patient

[신앙칼럼] 은혜의 환대의 모략(The Conspiracy Of Gracious Hospitality, 마태복음 Matthew 7:1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환대(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환대(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환대의 대가,

[추억의 아름다운 시] 우리가 서로 사랑 한다는것

김수환 추기경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나는 행복합니다.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나는 행복합니다.꽃이랑,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아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수필] 카이자의 삼각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살다 보면 떠밀리듯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변명이나 용서를 구할 틈도 주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다. 버릴 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가입 전에 꼭 알아야 할 용어 정리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에 처음 가입하거나 플랜을 변경하려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바로 ‘용어’다. 파트 A, B, C, D부터 시작해 메디갭, 프리미

[애틀랜타 칼럼]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이용희 목사 “나의 실패를 책임질 사람은 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바로 나의 큰 적이요 비참한 운명의 원인입니다. “이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있던 프랑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