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현하, 감사와 성탄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하신 명쾌한 삶의 진단의 핵심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소진의 회복(Recovery Of Exhaustion)>에 대하여 오랫동안 고민하며 삶의 전에너지를 쏟아부은 결과, 그가 발견한 해답은 예수님의 질문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아내었습니다.
삶의 두 갈래길,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의 갈등상황에서 고민했던 햄릿의 고민은 비극적 결말을 얻고서야 ‘삶의 소진’문제가 일단락되었지만 우리 예수님의 의도는 <사느냐, 죽느냐>의 정곡을 바로 알게 해 주시므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결국은 유일신이신 예수님과의 원초적 관계를 회복할 때, 현하, 삶의 궁극적인 <의문표>는 답을 얻게 된다는 결론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삶의 목표나 목적이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단정짓는 사람과 삶의 목표나 목적은 인간의 행동과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라고 신뢰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천양지차(天壤之差, A difference as vast as the sky and the earth)>입니다. 여기에는 <명확성(Clarity)>과 <도전성(Challenge)>이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이 넘도록 가장 지근거리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며 생생한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존재는 오리무중(五里霧中)에 있었고 분명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최고의 영적인 삶의 핵심이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절감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 양심의 화두를 들이대면서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한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는 건강한지 병들어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단순한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과연 어느정도가 될까? 이 의문점은 2000년전의 예수님 때나, 21세기의 첨단과학, AI시대의 오늘에도 여전히 의문부호는 변함없다는 것이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삶이 온전한 영적인 삶으로 회복될 때, 소진의 회복은 이루어집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것을 “영적인 발돋움(Reaching Out)”이라 합니다. 영적 발돋움은 우리의 영적 삶이 내면의 자아성찰의 최고수위에 도달할 때, 우리의 연계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발돋움하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오 하나님, 자아를 향하여, 타인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인 발돋움을 하므로 소진된 자아, 소진된 타인과의 관계, 소진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명의 삶으로 회복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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