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삶’은 달걀이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5-31 18:14:5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삶’은 달걀이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냉면 위에 얹힌 삶은 달걀을 입에 쏙 집어넣은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낯 선 번호였다. 얼떨결에 받은 전화 속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차! 방심했구나.’ 반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맛나게 먹으려던 달걀이 목에서 딱 걸렸다. 

그의 전화는 늘 일방적이었다.  내가 그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맨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당시 신문에 연재했던 내 칼럼을 읽고 전화 하는 거라 했으니 아마 7-8년 전 즈음이지 싶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풀어 놓고는 다짜고짜 해결책을 대라는 거였다. 글 쓰는 분이니 책도 많이 읽었을 테고, 그런즉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보라면서 저돌적이었다. 도와달라는 건지 싸우자는 건지, 자초지종도 알 수 없는 남의 인생에 무슨 해답을 내놓으라는 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가 먼저 전화를 탁 끊어버렸다.

그 후 잊을 만하면 전화가 왔었다.  번번이 제 할 말만 퍼붓고는 끊었다. 어떤 때는 내 속이  뒤집어져 확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오죽 답답하면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전화해서 한바탕 쏟아낼까. 그래,  어쩌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속을 푸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지. 꾹 참었다. 인생길에 딱 맞는 해답이 어디 있나. 쭉쭉 뻗은 고속도로를 만나면 속도도 올려 보고, 풍광 좋은 산길에서는 쉬어가기도 하면서, 앞에 보이는 작은 빛 하나 바라보며 터널 속을 달리 듯 사는 게 인생지사 아니던가? 

이번에도 그의 넋두리는 변함없었다. “ 세상에 기댈 곳이 없어서 너무 외로워요. 자식도 친구도 다 만나기 싫고, 그냥 누워서 천정만 바라보면 움직이기도 싫어요. 나는 너무 힘든 데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같아서 너무 우울해요.”그의 머릿속에서  나는 가진 자이고, 누리는 자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왜 제 인생길만 가시밭길이라는 생각을 할까.  사실, 돌아보면 내 인생길도 삶은 달걀에 막힌 목구멍처럼 퍽퍽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데. 되레 평생 돈벌이 없어도 살아가는 그의 삶이 부럽다고 소리칠 판국이다.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그럭저럭 일상을 해내려는 의지만 있다면 우울감은 질병이라기보다는 환경에서 영향을 받는 기분의 변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속을 풀어내고 위로의 말이라도 한 마디 들으면 기분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기분이 우울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행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처럼 우울 감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 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사십대 후반에 심한 우울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인간관계에 회의가 일기 시작하더니, 마음이 너무 공허해졌다. 모임에 참석하면 우울감을 감추느라 짐짓 명랑한 척을 해야 했다. 친구가 부르면 한밤중이래도 달려 나갔던 내가 왜 이럴까? 갱년기 증상일까, 자괴감일까,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무릎을 딱 쳤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 때 절망을 느낀다. 그러나 가장 깊은 절망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명언이었다.  

맞다. 그 당시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은 모임이나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모임에 참석하고, 나보다 훨씬 잘나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꾸며낸 나의 위선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고 살았든지, 무엇을 더 배웠든 가진 것이 얼마이든지 간에 그건 남의 것일 뿐이다. 남의 시선에 나를 맞추느라 지금의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면, 이 순간의 작은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가장 억울한 인생이 아닐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도 외롭지 않은 척, 행복한 척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지 누가 알랴. 인간지사는 모두 도긴개긴이다.

 

삶은 달걀은 껍질째 먹을 수는 없다.  퍽퍽해서 목에 걸릴지언정 삶은 달걀은 껍질을 깨야만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자, 껍질을 벗기자. '삶'은 달걀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추억의 아름다운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날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

[수필] 내 인생에 대한 예의
[수필] 내 인생에 대한 예의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합리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배고픈 여우가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타운하우스 보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타운하우스 보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은 흔하다. 한국에서도 시골에는 노년층이 남아 있고 젊은 세대는 대부분 도시에서 생활한다. 도시에는 일자리도 많

[내 마음의 시] 님은 나의 봄
[내 마음의 시] 님은 나의 봄

월우 장 붕  익(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긴 겨울 끝에눈이불 뚫고 고개드는수선화이듯이님은 설레이는 기쁨으로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님의 몸짓 하나로온 세상은어느새 봄빛으로 물듭니다.

[애틀랜타 칼럼] 최악의 상황에 맞서라

이용희 목사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중에 “캐리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기 조절 장치를 개발한 기사이며 캐리어 회사의 사장이었던 윌리스 H. 캐리어가 실행했던 방법

[법률칼럼] 미국 이민, 이제는 ‘기록’이 아니라 ‘패턴’을 본다… 2026년 심사의 변화

케빈 김 법무사  2026년 현재 미국 이민 심사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개별 사건이나 특정 기록 중심으로 판단이 이루어졌다면, 최근 흐름은 신청자의 전체적인 ‘행동

[행복한 아침] 꽃가루  폭력

김 정자(시인 수필가)   꽃가루가 씻겨 나갈 만큼의 비가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꽃가루가 천지를 덕지덕지 뒤덮는 호통 속에 하루들의 지친 걸음이 지속되고 있다. 세상은 전쟁으로 인

[신앙칼럼] 수미상관(首尾相關)의 하나님: 왕사남의 당당함 (The God of Symmetrical Correspondence: The Poise of a Man Who Lives with the King, 요한복음 1:14)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서론] 장막을 치신 왕: 비굴하지 않은 자존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삶의 새로운 관점이 열릴 때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삶의 새로운 관점이 열릴 때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에 삶의 새로운 관점을 열어나가는 세계관의 변화에 의한 미래 지향적인 삶의 도전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삶의 새로운 통찰력은 유익한 관점을 창

[추억의 아름다운 시] 님의 말씀

김소월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길어 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