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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 이사야Isaiah 49:5)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5-08 10:43:39

신앙칼럼,방유창 목사 혜존, 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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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21세기의 그리스도인에게 발견되어지는 가장 큰 모순적 현상은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이라는 궤에서 예리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의 모순적 현상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것에 대해서 예언한 선지자가 구약시대를 이끌어간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입니다. 그는 이사야 49:5에서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어주셨다”고 <이해와 순종>의 궤를 예언의 말씀으로 미리 확정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사야는 이 말씀을 통하여 이사야 49장 5절에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종 그 자체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종에서 자유자가 되게 하시는 구속의 계획을 이사야를 통하여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종에서 자유자가 되게 하시려고 이사야를 통하여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의 올바른 길로 인도하셨던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곧 구원의 여명(The Dawn Of Redemption)이심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과감하게 선포하셨습니다(이사야 49:1-55:13). 

이것을 더욱더 선명하게 보여주신 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사야의 구원의 여명을 구원의 아침되게 하신 예수님은 이미 구원자 하나님께서 영원한 자유를 주셨음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은 자신의 눈높이에서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으로 모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마태복음 23:37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모순은 모순을 낳고 모순은 또 모순을 낳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사야 시대에 저질렀던 종의 굴레 속에서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이라고 확신하며 살았던 잘못된 신앙의 전통을 700년후에 <구원의 찬란한 아침(The Bright Morning Of Redemption)>을 가져오신 예수님 시대에도 여전히 답습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연실색(啞然失色, Be Dumbfounded)>할 일입니다. 

더욱더 모순적인 현상의 악순환은 여전히 21세기의 현대 그리스도인조차도 예수님에게 실망감과 통탄함의 장본인, 이스라엘이 범했던 전혀 다르지 않는 그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의 궤로 모순의 뫼비우스띠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이해와 순종은 자신의 안일한 신앙관, 천국관, 구원관의 알을 깨고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의한, 예수님을 위한, 예수님의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다시 말해서 그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이 삶의 본질이 되기만 한다면 나아가서 그 확신으로 몰입하게 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잘못된 인식과 오해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막 9:50).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은 참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올바른 이해와 확신의 순종은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참 소금입니다. 현하, 그리스도인이 불가능이라고 잘못 이해하여 신앙의 길이 아닌 불신앙의 길을 걷고, 마땅히 신앙의 진보를 보여주어야 할 삶의 변화가 없이 천국만 바라보며 무위도식하는 나태한 모습에서 이제는 한걸음 나아가서 자기희생, 겸손, 사랑,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김. 절제와 경건의 구체적 삶의 행동으로 진정한 자유인, 올바른 구원받은 자의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의 열매가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결실해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곧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사 49:5) 나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오늘 나태하고 안일한 병든 천국관을 버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천국인의 모습으로 변화된 참 이해와 순종을 삶의 본질과 신앙의 확신으로 삶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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