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본향으로
아이들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엔
계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둥굴레산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동그레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상아, 뻐국채, 범부채
마주재,기록이 도라지 체니 곰방대
곰취 참두릅 개두릅 훗잎 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고
개암쌀을 까며 소녀들은
금방망이 은방망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는 산골 교회가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에서 온 반마처럼
향수에 잠기는 날이 있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얗게 피는 곳
나무짐에 함박꽃을 꺾어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원이더니
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 꺾다 나면 꿈이었다. ( 시, 노천명 1912--1957)
늘 몸이 약하여 오래 살아 달라고 지은 이름이 '천명'이었다.
그 시절 이대 영문과를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 처녀 시집 『장호림』, 『창변』, 『별을 쳐다보며』 등 많은 시집을 펴냈다.
오래 살아 달라고 지어 준 이름 '천명'을 거역하고 1957년 46세로 운명하였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 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 껏 들어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치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 시, 노천명, 이름없는 여인되어)
세월 속에 '맑은 영혼'의 시는 "바로 지금", "오늘의 얘기"입니다.
지금 막 쓰신 시처럼 따끈따끈한 시의 전율이 상한 가슴을 적시웁니다.
그 맑은 영혼의 못다 쓴 시는 어느 은하수 하늘가에 새벽안개 되어 쓰여질 것입니다. 그리움 가슴에 피어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