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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새해 첫눈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1-17 08:23:15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새해 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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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어느 새 벌써 지난 주말 일이 되어버렸다. 일기예보에 눈이 내릴 확률이 90%인데다 동이 틀 무렵부터 눈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새해 첫눈 맞이가 되려 나하고 새벽 여명이 걷히기도 전에 창 밖을 주시하게 되었다. 해 뜰 시각은 아직 한참인데 기대감이 고조된다. 날이 밝아올 무렵을 기다리는 미명에 어둑한 밤그림자가 걷히고 푸른 새벽이 설편을 머금은 듯 조심스레 열리고 있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자 희끗희끗 눈송이가 비치기 시작한다. 아득한 하늘로부터 겨울 빈들 위에 여린 몸짓으로 소리 없이 내려 앉는다. 깊은 고요를 깨고 사분사분 내리던 눈발이 점점 굵어질 조짐을 보이더니 포슬포슬 하얀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창을 두드리던 바람이 눈을 데리고 찾아와주어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 든다. 시야에 가득한 풍경은 하얀 여백 뿐, 일상 풍경을 장대한 산수화로 바꾸어 놓았다. 눈이 풍경을 지배하고있다. 만상 위엔 정적이 흐르고, 엄청난 자연 에너지를 담은 성대한 성화를 만난 것 같다. 들판도 길도 온통 눈부시도록 하얗다. 눈이 세상을 덮어주고 쌓인 눈은 다시 빛을 반사해 겨울 왕국을 만들어낸다. 온통 무채색으로 채도 없는 명도 차이만으로 채색된 풍경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자연이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음이요 사람은 도리어 고립된 모습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극한 날씨 잎에 인간은 더 없이 작아져 보인다. 눈 속에 고립된 듯 꼬박 이틀을 방콕으로 보냈다. 

새해 첫눈이 내렸다. 애틀랜타에서 7년 동안을 만나 보지 못했던 반가운 눈풍경을 창조주께서    베풀어 주셨다. 눈송이가 어지간히 송이가 굵어진 것 같다. 드디어 곱던 눈발이 굵고 탐스럽게 함박 눈으로 변하고 천지는 순백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바람기에 기대 듯 리듬에 실린 듯 포근하게 눈이 쌓여간다. 하얀 빈 캠퍼스에 그린 그림이듯 만상이 멈춘 듯, 천천히, 가끔 씩은 바람에 실린 듯, 나붓한 리듬에 실려 한 없이 여유로운 몸짓으로 배회하듯 들판으로 지붕 위로, 차량들 위로 그지없이 내려 앉는다. 삼라만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다. 바퀴자국 하나없이 새하얀 눈으로 덮인 새 길이 돋보인다. 고요 롭고 흔들림 없는 잠잠한 기운에 잠겨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첫 눈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을 바라보며 마음 속의 묵은 찌꺼기가 씻겨지는 듯 마음이 해맑아진다. 인생들의 욕심으로 오염된 것들이 새하얀 첫 눈으로 하여 말끔히 정리된 신선하고 산뜻한 아침맞이가 되어주었다. 소담한 꽃 송이가 내려 앉듯 함박눈으로 변한 눈 송이의 난무가 아우성이 되어 마치 하늘 합창단 함성처럼 번진다. 계곡에 흐르는 개울물 소리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질러대는 함성 같기도 하고, 재잘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터질듯한 웃음 소리 같기도 한데 어쩌면 백설의 춤사위에 어우러지고 싶은 염원의 울림 같기도 하다. 

만물을 하얗게 감싸주는 백색 신비는 하늘에서 내려온 경쾌한 무정부주의자 같다.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는 재주를 가졌다. 눈 덮인 풍경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나 초라한 초가집이나 구분이 없어진다. 가난과 부, 낮음과 높음, 추함과 아름다움 경계를 무시해버리는 고아한 재능을 지녔다. 시인들이 사랑하는 기상 현상이다. 마치 보헤미안 댄스 곡이라도 흘러나올 듯 세상이 밝아진 것 같아 어린아이 마음이 된다. 온통 눈부신 백색의 화원이 꿈꾸듯 펼쳐져 있다. 살아오는 동안의 간절함, 달관했던 마음의 미동, 세상 흐름에 실리지 않으려 변증의 분분함을 표현하지 못했던 안타까움, 열심 있는 깨끗함을 사모했던 필름들이 무작위로 흐른다. 눈발이 서먹하니 성기기 시작하더니 제 일 다 했다는 듯 일손을 멈춘다. 한 없는 고요에 잠겨 있다가 문득 눈이 쌓여 눈무덤을 이룬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은 서 있는 그대로 하나의 하얀 꽃다발이 되고  만상은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끝 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이 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포슬포슬한 눈이 덮인 벌판 위에 무아의 발자국을 남기며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진다. 창가에 앉아 하얀 눈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까지 하얗게 물들고 있다. 흰색을 무채색에 속한 것으로 단정지우고 있지만 하얀 색은 새로운 공간을 독창적 창조로 열어 간다. 자유, 비움, 때로는 채움까지 상상의 통로로 표현되기도 한다. 원색도 아닌, 보색도 아닌 것이 색채 중 가장 격렬하고 수준 높은 경지의 지님과, 강인함의 표상으로, 견뎌내는 힘의 크기와,   대처하는 뛰어난 능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지마다 눈부신 눈꽃으로 단장한 나무들과 눈 꽃을 바라보는 우리네 마음에도 하얀 눈꽃을 피워낸다. 평화와 고요와 세상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들게 해준다. 세상살이에 찌든 부정적 감성들까지도 하얀 눈 꽃의 순결함으로 채울 수 있기를 소원 드리게 된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게 되면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가 눈이다.눈이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을 눈꽃으로, 서화라고 이르기도 하는데 풍년이 들게 하는 꽃이라는 뜻이 숨어있다. 눈 모양이 여섯 모라 해서 육화로, 아름다운 티끌이라 해서 옥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애틀랜타라 그런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유년에 즐겼던 눈사람 풍경도 떠오르고 이국에서 만난 첫눈 내리던 날의 정경들이 눈송이처럼 송이송이 내려앉는다. 첫 눈이 오신 지난 주말이 일상 중에 몽실몽실 떠오르곤 한다. 새해 첫 눈은 순백의 행복을 안겨 주었다. 눈 내린 우리 마을이 그림엽서 같았는데. 눈이 내리자 괜스레 마음이 경쾌해지고 어린아이 같아졌는데. 세상이 환하고 밝은 하얀 옷으로 단장했기에 마냥 따습고 포근하기만 했는데.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하얀 눈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림 하게 될 것 같다. 새해 첫 눈을 만났던 그 날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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