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에세이] 묵사발의 맛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1-08 13:15:07

에세이,권조앤,오렌지 글사랑회 회장,묵사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말답게 테메큘라에 드물게 나무와 꽃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시작은 1976년 11월15일 한국의 오웅진 신부에 의해서다. 다리 밑에 걸인 18명을 보고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다.’라며 설립을 했다. 1980년대에 한국의 충북 음성으로 옮기며 거듭거듭 발전되어 2002년에 이곳에도 120에이커를 장만해 카톨릭 피정 센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예전에 인디언들의 휴양지였고 그 후 백인들의 고급 휴양지로 RV 공원과 캠핑 장소로 산에 둘러싸여 아늑하다. 연못에 연꽃이 피어나고 예순일곱 명까지 피정을 할 수 있는 집도 있다. 일반인들도 예약하면 빌려준다니 마음과 영혼을 쉬고 싶을 때 찾으면 좋으리라. 수녀님들의 평온한 모습과 봉사자들의 넉넉함을 보며 천국을 떠 올렸다.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이 우리에게 점심을 권했다. 미안해서 괜찮다고 하니 정오 때 방문하는 사람들한테는 누구에게나 음식을 대접한단다. 식당에 들어가니 도토리 가루로 만든 묵사발이 준비되었다. 하늘을 가린 도토리나무 사이로 트레킹을 했는데 거기서 나온 도토리니, 완전 무공해 음식이다. 일일이 껍질을 까고 가루로 만드는 번거로운 단계를 거쳤을 손길이 느껴졌다.

국 그릇에 밥을 약간 담고 묵을 올렸다. 채소 썬 것과 직접 키우는 닭이 낳은 계란으로 만든 지단과 김을 올렸다. 무지개처럼 예쁜 색상의 묵밥에 부추 파 마늘 고추로 양념장을 만든 것으로 쓱쓱 비볐다. 맑은 미역국까지 먹으니 이런 별미가 또 어디에 있으랴. 감사가 넘쳤다.

이날 이후 묵사발 맛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묵 가루를 구해 만들어 먹었다. 문득, 실수해서 망신을 당한 날 친구가 “오늘 나 묵사발 되었어.”라고 했던말이 기억났다. 망신이나 왕따 당한 날, 싸워서 졌을 때 묵사발 되었다고 표현했다. 

어원을 찾아보니 ’사정없이 밟아서 뭉개버리자’란다. AI Ask Up에 물어 보았다. 묵사발은 맛있고 기분 좋은 음식을 의미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표현이라고도 한다. 낯선 표현이다. 이상해서 구글에서 찾아보니 ‘상대방을 뭉개 버리는’ 뜻으로 나와 있다. 혼동된다. 

내가 고국을 떠난 지 오래되어 의미가 변한 표현을 모르고 있었나. 맞다 틀리다 정의가 변하고 있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묵사발뿐 아니라 신생 어나 변형된 단어가 TV나 SNS에 자주 나와 당황하기도 한다. 내가 늙은 것인지 세상이 빨리 변하는 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본국에서 사는 사람은 적응하며 살지 모르지만 이민 온 사람은 그 당시의 언어에 머물러 추억을 새기며 산다는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이런들 저런들 어쩌리. 묵사발의 맛을 뒤늦게 알아버렸으니. 엄마가 해 주었던 김치 송송 썰어 넣은 묵무침을 나는 참기름과 김을 구어 부셔서 비빔밥처럼 숟갈로 떠먹는다. 2025년 새해가 되었으니 테메큘라 꽃동네에 방문해야겠다. 힐링이 되는 그곳에서 한해를 멋지게 살아갈 계획을 짠다는 핑계로 수녀님이 해주는 묵사발을 먹고 와야겠다. 

<권조앤 오렌지 글사랑회 회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인의 명복이나 빌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향수

정지용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해질 무렵)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샬럿에 사는 친구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공기 포장지로 꽁꽁 싸맨 유리병 속 생강 레몬차, 일회용 팩에 담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 파트 D는 처방약 보험으로, 오리지널 메디케어 가입자나 일부 어드밴티지 플랜 이용자가 별도로 가입해 약값을 보장받는 제도다. 그러나 약값은 플랜에 따라

[애틀랜타 칼럼] 내 탓이라고 말하라

이용희 목사 우리가 일을 하다가 어떤 실수를 저질렸을 때 간혹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관용이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2026년부터 자선기부 공제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표준공제를 적용하는 납세자도 일정 한도 내 현금 기부에 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법률칼럼] 영주권·비자 거절이 곧바로 추방 절차가 되는 시대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들어 USCIS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영주권이나 비자 신청이 거절되더라도 일정 기간 재신청을 고민하거나, 자진 출국을 준비할 수 있는

[행복한 아침]   안녕 11월이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품고 있는 11월 끝자락이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어찌 이른 듯, 가을과 겨울이 맞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최희정 (동의한의원 원장) Q:  몇 주 전부터 오른쪽 바깥쪽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왜 그럴까요?A:  팔꿈치에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팔꿈치 바깥쪽이

[신앙칼럼] 삶의 핵심(The Core Of Life, 마가복음Mark 8:27-30)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현하, 감사와 성탄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하신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