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12월4일이 내 어머님 생신이었다. 어머니 기일보다 어머니 생신날이면 그리움이 공명으로 진폭 되어 물결 마냥 밀려든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반란이 나도 모르게 커다란 공백을 만들어가고 있었나 보다. 전화 속에서도 매번 별일 없느냐고, 밥은 제때 때 놓치지 않고 거르지 말라고, 잠은 잘 자느냐고, 물으시고 또 물으셨던 그
마음이 지금도 귀 속을 맴돌고 있다. 낯선 땅으로 딸을 떠나 보내고 멀리서 지켜보아야 하는 안타까운 형벌을 감수해 내신 세월이셨는데 이젠 뵐 수 없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 너머에 계시지만 그 자애로움은 여식의 가슴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리움 공백을 아무리 압축한다 해도 오늘도 곁에 계시지 않으시기에 안아드릴 수 없어 추억으로 남겨진 훈기로만
존재의 부대낌을 부단히 회고할 수 밖에 없는 겨울 밤이다. 줄곧 파일에 저장하는 것으로 그리움의 흔적을 남겨왔지만 오늘 같은 겨울 밤 먼 기적 소리가 고향에서 듣던 기적소리 인양 세월을 둘둘 말아버리고 싶을 만큼 울적한 심사를 사무치게 휘저어 놓는다. 마냥 글로 그리움의 은유를 남기게 되는 것 또한 멈출 수 없는 여식의 빈 몸부림의 해소일 뿐이다.
어머니 곁을 떠나 와 낯선 땅을 디디고 살아가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생의 길동무를 만나고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축복을 안고, 이방인의 삶을 자처해 왔지만 어머니와 함께 헸던 고향이 언제 까지고 기다려 줄 것 같은 영원한 생의 근간으로 남겨져 있다. 이국 땅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지만 발걸음은 고향 지축을 향해 몸을 맡기고 마음을 의탁할 수 밖에 없는 나그네 삶을 이어 왔다. 내 몫으로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 낡음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영혼을 가다듬으며 반듯한 자취를 남기려는 의지로 살아 가야 할 숙제가 남겨져 있다. 노년의 끝맺음을 위한 마무리까지도 묵묵히 버티어 내며 감당하려 하는 것은 어머니께서 남기신 뒷모습을 재현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음. 팔은 안으로 굽는 원리로 어찌 보면 그리움의 갈무리가 빚어낸 미묘한 감응에 대응하는 현상 같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동경과 사모로 이어지고 있다.
이국살이 동안 꿋꿋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일념을 비집고 세상살이가 때로는 거센 폭풍이 되어 몰아치기도 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또렷한 현실 앞에 부대끼느라 그리움은 둥지를 틀지도 못한 시간도 있었지만, 가슴을 뚫고 매섭게 지나가는 바람 같은 흐느낌으로 심성 깊숙이 똬리를 만들어가고 있는데도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부단히도 삶의 끄나풀을 놓치기 않으려 고국의 산수화 여백을 새삼 마음에 심으며 처연하게 걸어왔던 이방의 삶이었다. 그리움을 품어 내기가 버거운 이국살이 였지만 그리움은 멍자국처럼 동그마니 자국을 남겼다. 가슴으로 품고 가슴으로 어루만져 온 심경이었기에 그리움이 그나마 각박한 이국의 삶을 견디게 해주었다. 간간이 삶의 무게를 힘들어 하는 딸을 위해 일러 주셨던 비움의 진리가 말 없는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삶의 무게는 스스로를 비우는 겸손이 짊어질 때 훨씬 가벼워질 뿐 아니라 소중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입증하는 삶의 모습들을 목도하면서 가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까지도, 비어 있을수록 더 맑은 음을 공명해 낼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음 할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님께 감사를 올려 드린다. 내 어머님께서 손수 보여주시고 가르침을 주셨던 삶의 여백을 품고 간직한다면 진눈개비가 내려도 삶의 품은 늘 따스할 것이라 자부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받은 딸 답게 어떤 언덕도 두려워하지 않는 딸로 살아가겠 노라고 어머니께 헌정을 올린다.
이방인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어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하얗게 비워둔 파일 위에 눈물 대신 여린 미소로 화답해 주고 있다. 내 어머님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이 겨울날 빈 들판에서도 반영 할 수 있게 해 주셨음을 깊이 감사드리게 된다. 나 목의 비움을 비견해 보더라도 새로움을 향한 부활을 꿈 꾸고 있는 순환을 배우게 해 주는 것을. 새로움을 향한 비움은 채움을 위한 고귀한 중흥을 꿈꾸는 구도자의 발걸음이 새겨 놓은 고뇌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행운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움을 지향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일찍이 깨달은 결과이다. 일상의 흐름을 채움보다 비움에 초점을 두라 하셨던 살아생전의 어머님 삶의 철학이 빚어낸 산물이요 성과요 결실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된다. 자손들로 하여 환호성을 지를 만큼 기쁜 일들이 있을 때, 삶의 마디 마다 무시로 구름처럼 떠다니며 북받친 가슴을 비워주곤 하신다. 자연의 부분으로 생각해왔던 겨울 산은 더 비워내려는 깊음으로 가고 있지만 늘 손짓으로 우리네 인생들을 불러들인다. 겨울 닮은 청명한 가슴이 되어 세상을 지나가라 일러준다. 겨울 그리움은 어머니 혜훈을 다시금 일깨워주어 침잠으로 사유하라는 성찰을 명징하게 돌아보게 해 주었다. 겨울 나무들이 힘껏 팔을 뻗어내며 어머니 생일 축하 송을 신명 나게 불러주고 있다. 다음 콘서트에는 겨울 그리움을 준비하고 있다는 귀띔을 곁들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