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산골 일기] 가을로 가는 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0-02 14:49:16

산골 일기,김용현,가을로 가는 길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산골에는 가을이 일찍 찾아온다. 지구를 벌겋게 달궜던 이상 기후도 달력이 9월 하순을 넘기자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전해준다. 산골에서 여름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소나기도 맞았던 녹색의 나무들은 어느 사이 단풍 드는 나무와 낙엽 지는 나무, 그리고 끝까지 녹색을 고집하는 나무들로 나누어진다.

산골이라고 하나 심심산천에는 어림없고 본시 공원과 숲이 많아 ‘가든 스테이트’ 라는 별칭이 붙은 뉴저지 중부지역의 배스킹 리지 라는, 해발 335 피트, 미터로는 100 미터가 조금 넘는 산동네다, 단풍 길로 유명한 78번 프리웨이를 따라 동쪽으로 28 마일 가면 뉴왁 공항이 있고 프린스턴은 남쪽으로 24 마일, 한인들이 밀집해 사는 팰리세이즈 파크는 북동쪽으로 45 마일 거리에 있다.

그 산등성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딸네 집의 마당 한 쪽으로 세로 145인치 가로 50인치씩 나무 테두리를 쳐 놓은 15개의 텃밭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여기에서 4마일 가량 내려와 산비탈이 끝나는 평지에 있는데 지난 해 6월 이사 온 이후로 특별한 볼 일이 있기 전에는 매일 같이 산길을 따라 딸네 집 텃밭에 올라가는 것이 내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 여름에는 해 뜨기 전인 이른 시간을 택하다가 요즘은 그보다 늦은 아침 9시 전후에 올라가 간밤에 몰라보게 자란 야채와 꽃들을 둘러본 뒤 잡초 뽑고 열매 따고 물주고 텃밭 주변 정돈하고-- 그러다 보면 2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간다. 그사이 학교 가는 손자의 인사를 받고 쉼터 의자에 앉아 딸이 만들어 오는 커피 마시면서 --, 산골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텃밭에 가서 일하는 시간 못지않게 거기 올라가는 15분의 산길이 즐겁다. 울창한 숲을 뚫어 만든 1차선의 좁은 도로라 조심조심 운전하지만 이제는 어느 집 앞을 지나면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보이고 어느 모퉁이에는 사슴이 지나가고 어느 큰 나무 밑으로는 다람쥐들이 놀고 있는 곳인지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차가 왕복 한 대씩만 지나게 되는 ‘외나무다리’에 이르면 신경이 바짝 쓰인다.

당초 ‘탈 도시‘니 ’귀농‘이니 하고 주제 넘는 소리를 하며 온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니 딸과 사위가 기왕에 있던 텃밭을 우리들의 소일거리로 확장해 놓은 배려가 기특했고 와서 보니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난 6년 동안 시골중학교 과목에 농업실습도 있었던 터라 나는 크게 생경하지 않았으나 아내가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어 마음이 놓인다.

늦깎이 농군 부부가 일군 올해 작황이 풍작은 아니다. 그런대로 방울토마토와 호박, 오이, 상추 등은 여름내 두 집 식탁을 그린 색으로 덮을 수가 있었고 더러는 이웃과 정을 나누기도 했다. 며칠 전 늦가을 수확을 기다리며 수박과 무, 케일, 청경채, 실란트로 등을 조금 더 심어 놓았다.

간혹 호박 넝쿨에서 죽은 줄기를 따낼 때가 있는데 같은 큰 줄기에서 나왔건만 어느 줄기는 지금도 열심히 호박을 키워나가는데 다른 줄기는 처음부터 시들시들 추하게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본다. 권력도 그와 같아 애초부터 흥하기로 마음먹은 권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망하기로 작정한 권력도 있는 듯 하다.가을로 가는 길에서, 결실과 나락, 만남과 별리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풍경을 만난다.

<김용현>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인의 명복이나 빌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향수

정지용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해질 무렵)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샬럿에 사는 친구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공기 포장지로 꽁꽁 싸맨 유리병 속 생강 레몬차, 일회용 팩에 담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 파트 D는 처방약 보험으로, 오리지널 메디케어 가입자나 일부 어드밴티지 플랜 이용자가 별도로 가입해 약값을 보장받는 제도다. 그러나 약값은 플랜에 따라

[애틀랜타 칼럼] 내 탓이라고 말하라

이용희 목사 우리가 일을 하다가 어떤 실수를 저질렸을 때 간혹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관용이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2026년부터 자선기부 공제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표준공제를 적용하는 납세자도 일정 한도 내 현금 기부에 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법률칼럼] 영주권·비자 거절이 곧바로 추방 절차가 되는 시대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들어 USCIS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영주권이나 비자 신청이 거절되더라도 일정 기간 재신청을 고민하거나, 자진 출국을 준비할 수 있는

[행복한 아침]   안녕 11월이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품고 있는 11월 끝자락이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어찌 이른 듯, 가을과 겨울이 맞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한방 건강 칼럼] 테니스 엘보(Tennis Elbow)의 한방치료

최희정 (동의한의원 원장) Q:  몇 주 전부터 오른쪽 바깥쪽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왜 그럴까요?A:  팔꿈치에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팔꿈치 바깥쪽이

[신앙칼럼] 삶의 핵심(The Core Of Life, 마가복음Mark 8:27-30)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현하, 감사와 성탄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하신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