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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간식으로, 애벌레는 약으로...꿀벌은 인간에게 다 줬다

미국뉴스 | 기획·특집 | 2024-08-02 16:08:10

양봉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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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의 역사

어린 시절 나는 입병(구내염)을 자주 앓는 아이였다. 한번은 입병을 앓는 채로 조부모 댁에 갔더니 할아버지가 다락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오셨다. 대체 언제부터 묵혀 두었는지도 모를 꿀이었다. 할아버지는 두툼한 숟가락에 꿀을 묻혀 입 전체에 골고루 발라 주셨다. 바로 핥아 먹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셨지만 다디단 꿀이 어린이의 입에서 오래 남아날 재간은 없었다.

<사진=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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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은 천연 감미료이지만 의약적 효능도 있다고 여겨졌다. 역사도 장구해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가 열이 날 때 꿀을 권유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단 꿀뿐만 아니라 양봉 자체가 인류에게 무척 귀한 자산이다. 꿀벌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상당히 많은 식물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의 약 65%가 화분 수정을 필요로 하며, 그 대부분이 꿀벌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처럼 인류에게 꼭 필요한 양봉이기에 역사도 엄청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거미동굴에는 8,000년가량 묵은 벽화가 있는데 인간이 벌집에서 꿀을 채취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고대 그리스, 스페인, 조지아(옛 그루지야)와 이스라엘 등 전 세계적으로 벌꿀 채집의 고고학적 증거가 남아 있다. 벌의 가축화는 4,500년 전 이집트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현대 양봉의 돌파구는 19세기에 등장했다. 그전까지 양봉은 짚으로 짠 바구니형 벌통이나 속이 빈 통나무에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로렌조 로레인 랭스트로스(1810~1895)가 새로운 벌집의 형식을 고안했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성직자 겸 양봉가인 그는 벌이 6~9㎜의 공간에서는 벌집을 짓지도, 프로폴리스(벌집을 짓는 수지 제형의 물질)를 만들지도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위 ‘벌간격'(bee space·5~9㎜)을 바탕으로 랭스트로스는 1851년에 이동식 벌통을 개발했다. 이 벌통은 수직으로 벌집을 고정시킬 수 있는 틀, 유충과 꿀을 위한 틀이 담긴 상자, 벌이 출입할 수 있는 바닥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듈러 구조였다. 한마디로 파일을 세로로 꽂아 정리하고 뚜껑을 덮을 수 있도록 고안된 서류함처럼 생겼다. 파일이 바로 벌집인 것이다.

1852년 특허를 획득한 랭스트로스 벌통에는 장점이 매우 많았다. 무엇보다 틀을 쉽게 분리할 수 있어 벌을 죽이지 않고도 간편히 꿀과 벌집을 채취할 수 있었다. 벌의 건강 상태를 살피기도 쉬운 한편, 조립이 간편해 이동 양봉이 몇 갑절 더 쉬워졌다. 

랭스트로스의 벌통 디자인은 당시 유럽에 존재했던 디자인들을 수렴해 개량한 결과물이었다. 그는 벌통의 디자인을 포함,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정리해 1853년 '벌통과 꿀벌(The Hive and Honey-Be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오늘날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랭스트로스 벌통은 널리 쓰이고 있으며 ‘벌통과 꿀벌'은 2004년 최근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널리 읽혔다.

■2000년 넘는 한국 양봉의 역사

양봉의 역사는 한국에서도 얼추 2,000년을 넘긴다. 고구려 동명성왕(기원전 58~19년) 시대에 재래종 벌인 동양종꿀벌(Apis cerana)이 원산지인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물론 세계의 경향과 마찬가지로 그보다 훨씬 전부터 바위틈이나 큰 나무의 구멍 등에서 야생벌의 꿀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헌에 의하면 한국의 양봉 기술은 삼국시대에 꿀벌과 함께 일본에 전해졌다. 의자왕 3년(643)에 백제의 태자 풍이 꿀벌 4통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을 전수했다. 이후 양봉은 계속 발전해 고려시대에는 유밀과(밀가루를 꿀, 참기름으로 반죽해 기름에 지져 꿀에 담가 뒀다가 먹는 과자)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꿀이 두루 쓰였다. 하지만 꿀의 소비량이 늘어나 왕실에서도 수요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명종 22년(1192)에 궁중만 제외하고는 유밀과를 금했다.

조선시대에는 인제의 꿀이 강원도 관찰사의 진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세종 15년(1433)의 '향약집성방'과 선조 때의 ‘동의보감(1613)'에는 꿀벌의 애벌레까지도 영약으로 등장할 정도로 양봉이 흥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실학파가 등장하면서 홍만선의 ‘산림경제(1554)'에 양봉 기술이 구체적으로 기록된다. 한편 한글로 편찬된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1809)'에는 벌꿀을 이용한 음식 조리법이 실려 있다.

당시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 지방 전역에서 양봉이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원시적이었다. 꿀을 두 종류로 분류했으니 벌집을 쥐어짜서 걸러낸 것은 생청(生淸), 밀폐된 방에 군불을 때서 흘러내린 꿀을 걸러낸 것을 화청(火淸)이라 했다. 둘 다 벌집을 파괴하면서 꿀을 얻는 채취 및 가공법이었으므로 꿀의 생산도 꿀벌의 번식도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근대 양봉은 191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독일인 카니시우스 퀴겔렌(한국명 구걸근·1884~1964) 신부가 국문으로 '양봉요지(1918)'를 펴내는 한편 이탈리아와 코카시안 등 서양종 꿀벌이 도입됐다. 양봉인 윤신영은 독일에서 8년 동안 연수를 마치고 1910년 귀국했다. 그는 벌통을 도입해 현대 양봉의 면모를 갖추는 한편 개량종 꿀벌의 양봉지침서 ‘실험양봉'도 썼다.

한국의 양봉은 193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벌꿀의 쓰임새도 다양해졌고 일반 서민까지 벌꿀을 쓸 수 있게 됐다. 특히 제약용 수요가 크게 늘었다. 당시 국내 최대업체였던 천일약방은 한방 소화제 영신환의 원료로 쓰기 위한 벌꿀 확보를 위해 양봉사업부를 설치하고 전국 산천을 옮겨 다니며 양봉을 했다.

■벌집 군집붕괴, 꿀벌의 경고

이처럼 여러모로 인간에게 이로운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소위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미국에서 2005년 처음 보고되었으며, 2007년에는 캐나다에서도 확인되었다. CCD는 벌집에서 일벌이 여왕벌을 남겨 두고 사라지는 현상인데 요즘은 지역을 막론하고 벌어지고 있다. 북아일랜드 정부의 경우 꿀벌 전체 개체 가운데 50% 이상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워낙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 벌이다 보니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 인간이 의존하는 작물 생태계에 벌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벌 덕분에 화분 수정되는 전 세계 작물 규모는 2005년 기준 2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작물의 수정을 위해 꿀벌을 빌려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도와 한국양봉협회 경기도지회가 지난해 1월 월동 꿀벌 피해 규모를 조사한 결과, 꿀벌 사육군수 25만4,448군 가운데 8만8,300군이 폐사 혹은 이탈했다. 1군당 꿀벌 1만5,000마리 정도가 군집하므로 약 13억 마리가 사라진 셈이다. 한국 양봉협회의 2022년 말 월동봉군 소멸 피해 현황에 의하면 전국 양봉 농가 1만2,795곳 중 82%에 이르는 농가 1만546곳이 피해를 입었다.

CCD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된다. 살충제나 진드기, 균사류, 항생제의 사용이나 벌통의 원거리 이동, 충분치 못한 영양분의 공급, 여왕벌의 상태, 면역 결핍 등이다. 2006년부터 미국이 주도적으로 원인 규명을 위한 연구를 활발히 펼쳐 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런 원인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정도의 결론만 도출해 내고 있다.

인류가 활용하는 식물 가운데 75%가 벌의 직접 화분 수정에 의존한다. 따라서 꿀벌이 사라질 경우 인류에게 미칠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북미의 경우만 해도 벌이 없으면 60가지의 주요 작물 가운데 7가지를 잃는다. 더불어 꿀벌도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면 과연 인간이라고 견뎌 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벌의 존립이 곧 인간의 존립일 수 있으니 상당한 수준의 경각심이 요구된다.

 

<사진=Shutterstock>
<사진=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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