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간 경쟁 윈윈사례 없어”
“초거대 인공지능(AI)이 공격용 무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AI 경쟁에서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죠. 마치 잠수함·미사일 등 공격 수단과 방어 수단이 맞서는 군비 경쟁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앤 뉴버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이버·신기술 담당 부보좌관은 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4’에서 “과거 군사기술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이 AI 기반 무기를 확보하기 전에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뉴버거 부보좌관이 등장한 세션은 ‘AI의 지정학(The Geopolitics of AI)’이다.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 겸 현 주미 호주 대사와 캐런 피어스 주미 영국 대사, 에바 메이델 유럽의회 의원 등이 참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보동맹체 ‘파이브아이즈(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주요 인사들과 유럽연합(EU)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이날 세션 참석자들은 중국의 AI 발달에 따른 안보 위협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서방의 ‘주적’은 중국이며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지정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후 중국과 각을 세워온 호주의 러드 전 총리는 “중국은 ‘윈윈’을 말하지만 AI 개발 같은 국가·진영 간 전략적 경쟁에서 윈윈하는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며 “AI 경쟁은 경제를 넘어서 첨단무기에도 적용되는 만큼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라는 점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략적 경쟁이라는 특성을 감안할 때 워싱턴의 현실주의자들은 중국 제재 이외에 다른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며 “적대적 행위자가 민주주의 사회의 분열을 꾀한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이델 의원도 EU의 중국 제재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EU 회원국들 간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더욱 전략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ASML의 10나노 이상 구형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에 대한 추가 규제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구촌 선거의 해’로 불리는 올해 AI가 선거 개입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캐런 콘블루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미 대사는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가 AI 맞춤형 메시지로 선거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이델 의원은 “AI가 SNS의 문제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며 “AI 시대에는 현재의 사이버 보안 협력이 비효율적인 만큼 동맹국 간 더욱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민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