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첫 피고인 신분
“평소 활기가 넘치던 전직 대통령은 깊은 수심에 잠긴 듯 보였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22일 뉴욕 맨해튼지방법원에서 열린 ‘성추문 입막음 의혹’ 재판의 첫 공판에 출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이날 텔레그래프는 국내외 언론에 배정된 방청석 64석 중 한 자리를 배정받아 법정에 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을 취재했다.
미국 역사상 전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소와는 달리 매우 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는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팔짱을 낀 채 먼 곳을 바라보거나 거의 움직임 없이 앞을 응시했고, 변호인들과 잠시 속삭이거나 배심원단을 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검찰이 45분에 걸쳐 피고인 혐의를 설명하는 모두 진술을 할 때도 검찰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판사를 향해 거침없이 발언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좌절감을 언론에 전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표정을 짓곤 했다”며 이날 그의 태도는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법원 바깥 풍경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일대 혼잡이 빚어질 수 있다는 당초 예상과는 달랐다는 설명이다.
뉴욕 당국은 재판 기간 법원 맞은편에 위치한 콜렉트폰드 공원을 시위 장소로 지정했지만, 이날 이곳에 모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소수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동차를 타고 법원으로 향할 때 공원에는 지지자들보다 반대파들이 더 많았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창 밖의 모습이 분명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원 출석 직전인 이날 오전 7시께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나가서 평화롭게 항의하라.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의미의 트럼프 전 대통령 캐치프레이즈)를 지지하기 위해 집결하라. 우리나라를 구해달라!”라고 써 지지자들의 결집을 독려했다. 그 뒤 오전 8시50분께에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위자들 수가 적은 것은 자신을 겨냥한 ‘음모’를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캠프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시위자 수가 적은 데 대한 NYT의 논평 요청에 바리케이드 때문에 지지자들이 법원이 위치한 로어맨해튼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 직전 전직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과거 성추문 폭로를 막기 위해 ‘입막음 돈’을 지급한 뒤 그 비용과 관련된 회사 기록을 조작한 혐의로 지난해 3월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 19일까지 배심원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날 첫 심리기일을 진행했다. 재판은 약 6∼8주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며 피고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 일정 내내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