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존 시나, 나체로 무대 올라 시선 집중…'누드 열풍' 70년대 소환
LA 할리우드서 대규모 시위대, 이스라엘에 휴전 촉구
10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은 파격적인 '누드 시상'과 진행자 지미 키멀의 뼈 있는 농담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시상식의 화려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이날 시상식이 열린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 밖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간 전쟁 반대 시위가 대규모로 열렸다.
일부 수상자들은 무대 위에 올라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명하며 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 70년대 시상식 재연…누드 시상에 폭소
이날 의상상 시상자였던 프로레슬러 겸 배우 존 시나는 주요 부위만 가린 채 나체로 무대에 오르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앞서 진행자인 지미 키멀은 1974년 제4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행사 도중 돌연 한 벌거벗은 남성이 무대 위에 뛰어올랐던 황당한 순간을 언급했고, 당시의 장면을 담은 영상이 재생됐다.
이어 키멀은 "만약 오늘 벌거벗은 남자가 무대를 가로질러 달려간다면 상상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그 직후 무대 구석에서 웃통을 벗은 존 시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시나가 이어 커다란 봉투로 주요 부위만 가린 채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자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수상 후보작을 보여주는 영상이 나타난 뒤 그는 고대 로마풍의 황금색 커튼을 두르고 등장해 의상상 수상자를 호명했다.
그는 영화 '바비'에 카메오로 출연한 인연으로 이날 오스카 무대에 섰다. 키멀이 나체를 언급한 데 대해 "웃기려고 한 것"이라고 말하자 "남성의 몸은 농담거리가 아니다"라고 외쳐 좌중을 웃겼다.
미 언론에 따르면 1970년대는 누드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이어서 남성들이 나체로 공개 행사를 방해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 진행자 키멀, '바비 감독상 제외·공화당 반박연설' 비판 농담 눈길
통산 네 번째 오스카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겸 방송인 키멀은 '바비' 사운드트랙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시작으로 행사의 막을 올렸다.
그는 "많은 사람이 감독상 후보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그레타 거윅 덕분에 이제 바비는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됐다"고 말했다.
이에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내자, 바비의 거윅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을 언급하며 "손뼉을 치고 있지만, 그(거윅)에게 투표하지 않은 건 여러분이다.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꼬집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앞서 할리우드에서는 이번 오스카 감독상 후보가 발표됐을 당시 바비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도 여성인 거윅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지명되지 않은 것을 두고 성차별 논란이 인 바 있다.
당사자인 거윅 감독은 자신을 지지하는 키멀의 뼈있는 농담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키멀은 영화 속 의상이라며 분홍색 바지를 들고 나와 "가져 가실 분"이라고 운을 뗀 뒤 자신이 가져가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키멀은 이날 오프닝 멘트로 미 대선과 관련한 정치적인 풍자도 곁들였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마 스톤을 소개하면서 "에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반박 연설을 한 여성처럼 어린아이의 뇌를 가진 성인 여성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대응하는 반박 연설을 한 공화당의 최연소 여성 상원의원 케이티 브릿(42)이 자택 주방에 앉아 연기하는 듯 부자연스러운 어조 등으로 연설해 도마 위에 오른 것을 꼬집은 것이다.
키멀은 또 지난해 배우와 작가들의 동반 파업으로 얻은 성과를 거론하며 "이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이상한 도시가 노조의 중심에 있음을 가르쳐줬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보톡스만 잔뜩 맞은 게 아니다"라고 농담했다.
이어 "우리가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곁에 모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노사 협상을 진행 중인 화물운수 노동자들과 무대 뒤 제작업무 노동자들을 무대 위로 불러내 좌중의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 시상식장 밖에선 휴전 촉구 시위
이날 시상식이 열린 LA 돌비극장 주변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상식이 열리기 3시간 전부터 시상식장 인근 선셋대로 교차로에서 수백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모여 행진하면서 이 일대에 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져 일부 참석자들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즉시 휴전을"이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당신이 (시상식을) 보고 있는 동안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쓰인 피켓을 흔들었다.
이 시위에는 할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과 미국TV라디오예술가연맹의 일부 회원들도 참석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이날 국제영화상을 받은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지금 우리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과 홀로코스트를 반대하는 사람들로서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이스라엘의 10월 7일 희생자나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에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 영화가 현재 전 세계의 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면서 "우리의 모든 선택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우리를 돌아보고 직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상식 참석자 중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와 그의 친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을 비롯해 배우 라미 유세프, 영화감독 아바 듀버네이 등이 빨간색 바탕에 손바닥이 그려진 동그란 핀을 옷에 달고 나와 휴전을 촉구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휴전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한 유명 인사와 연예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휴전을 위한 예술가들'(Artists4Ceasefire)이 제작해 배포한 것이다. 이 핀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고 무장정파 하마스에 끌려간 모든 인질을 석방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공개서한 서명자 약 400명 중에는 올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배우 겸 감독 브래들리 쿠퍼와 배우 아메리카 페레라를 비롯해 케이트 블란쳇, 벤 애플렉, 제니퍼 로페즈, 드레이크 등이 포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