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시총 3위로
거세게 몰아치는 인공지능(AI) 붐이 모바일 시대에 구축된 뉴욕증시의 질서를 거침없이 흔들고 있다. AI 대장주로 꼽히는 엔비디아 주가가 올 들어 49%나 뛰는 등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엔비디아는 미국 증시 시가총액 순위에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아마존닷컴을 잇달아 제치고 3위에 우뚝 올라섰다. 앞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애플을 추월하며 시총 1위를 차지한 원동력 역시 생성형 AI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최대 투자자라는 사실에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에 불어닥친 ‘닷컴 버블’과 비슷한 양상이라며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14일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전 거래일 대비 2.46% 오른 739.00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날 종가 기준 시총은 1조 8,25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로써 엔비디아는 시총 3조 430억 달러의 MS와 애플(2조 8,440억 달러)에 이어 뉴욕증시에서 세 번째로 기업가치가 큰 회사가 됐다. 엔비디아는 앞서 전날에는 아마존을 제치고 시총 4위에 올랐는데 단 하루 만에 3위 알파벳까지 제친 셈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대표했던 구글과 아마존이 AI 시대를 상징하는 엔비디아에 밀린 형국으로, 빅테크 기업들의 기존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마켓워치는 “엔비디아가 불과 3년 전에는 시총 기준 12번째로 큰 회사였으며 2022년과 2023년에는 7위였다”며 극적인 변화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엔비디아가 애플과 MS에 이어 ‘시총 2조 달러 클럽’에 입성하는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AI용 첨단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80%에 달할 뿐 아니라 향후 수요에 대한 기대감마저 커지면서 최근 1년간 주가가 221% 뛰었고 올 들어서만 49%나 급등했다. 특히 AI 열풍의 수혜주 가운데 실적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업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3분기에도 매출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배, 13배씩 뛰었다.
엔비디아가 AI 반도체를 넘어 ‘종합 AI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점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 사업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센터 시스템 구축, AI 서비스 플랫폼·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AI 산업을 수직 계열화하고 이를 통해 광범위한 생태계를 구축해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사로 빨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다 신사업 분야로의 적극적인 행보도 눈길을 끈다. 지난달 공개한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 플랫폼 ‘바이오니모’가 대표적이다. AI에 유전자 관련 데이터를 학습시켜 신약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AI를 활용한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플랫폼도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데 세계적인 완성차 기업이 고객사로 언급되고 있다.
MS 역시 AI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질서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MS가 종가 기준 처음으로 시총 3조 달러를 돌파한 것도 AI 분야에서 오픈AI와의 협력을 강화한 데 따른 것이다. MS는 AI 챗봇 ‘코파일럿’을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등 오피스 프로그램에 탑재했고 운영체제 ‘윈도11’ PC에도 코파일럿 전용 키를 도입하는 등 컴퓨터 환경에 AI를 융합하는 데 적극적이다. 또한 AI 작업에 필수적인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기업 지출이 증가하면서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의 매출도 크게 성장했다. 이러한 호재 속에 MS 주가는 오르는 반면 애플의 경우 중국 매출에 대한 우려 등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렸다.
다만 이 같은 랠리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일었던 닷컴 버블과 비슷한 양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엔비디아의 주가 추이가 닷컴 버블 당시 통신장비 업체 시스코의 흐름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스코 주가는 정점을 찍을 때까지 수년간 30배 이상 급등했지만 호황에서 불황으로 가기까지 단 4년이 걸렸다. AI가 만든 변화는 주가와 시장의 자금 조달 기대치보다 수년은 지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