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5년 무역질서 재편
미중 갈등이 5년 이상 이어지면서 글로벌 무역의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미국과 유럽·일본 등 미국 우방 국가들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으며 중국도 이러한 움직임에 맞서 브라질·러시아와의 무역을 늘리고 있다. 진영 간 무역 단절 양상이 심화할수록 교역 비용이 늘어나 각국 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까지 대중 강경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7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멕시코 수입액은 4756억 달러를 기록해 중국 수입액(4272억 달러)을 넘어섰다. 미국의 멕시코 수입액이 중국 수입액을 앞선 것은 2002년 이후 21년 만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중국산 스마트폰 수입량은 2023년 11월까지 약 10% 감소한 반면 인도산 스마트폰 수입량은 5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산 노트북 수입량은 30% 줄었지만 베트남 노트북 수입은 4배 늘었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인 일본 역시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크게 줄이고 있다.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일본의 최대 수출국이었지만 지난해는 미국이 4년 만에 중국을 제쳤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대미 수출액은 113억 달러로 대중 수출액(109억 달러)를 추월했다. 월간 기준으로 미국이 2003년 6월 이후 20여 년 만에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 지위를 회복한 셈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에서 180억 달러 적자를 보면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질적으로도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중국과의 거래 비중을 낮추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11월까지 대중국 수출 규모가 기존 1위에서 3위로 하락했다. 지난해 독일의 중국산 수입도 13% 감소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2019년 주요 7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수용했다가 지난해 12월 이를 번복하고 참여 중단을 통보하기도 했다. 일대일로 참여 이후 이탈리아의 대중 무역 적자가 40%가량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대중국 수출은 2019년 약 130억 유로에서 2022년 165억 유로로 증가했지만 중국의 대이탈리아 수출이 같은 기간 317억 유로에서 575억 유로로 더 가파르게 올랐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과 우방국들이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전략을 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미국 진영과 중국은) 디커플링하고 있다”며 “이는 전 세계 무역의 흐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특히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로 한국을 주목했다. NYT는 “SK와 LG·삼성·현대차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미국 생산 시설을 갖추면서 자국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미국과 한국 무역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우방국들의 무역에서 중국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 일종의 ‘착시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지 경로가 중국에서 제3국으로 변경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까지 미국의 베트남산 노트북PC 수입액은 8억 달러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베트남이 중국에서 수입한 노트북 PC 부품 규모도 8억 달러 늘어났다. 맥킨지는 “부가가치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수입 규모는 그렇게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이 관세 등을 회피하기 위해 제3국으로의 생산지 이전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