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하루 앞서 방문
‘친 노조’를 표방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조의 파업 현장을 찾아 시위에 동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시간주 웨인 카운티를 방문, 포드·제너럴모터스(GM)·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12일차 파업 현장을 찾았다. 이날 바이든이 찾은 현장은 GM의 부품 공장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노동쟁의 때 직원들의 출근을 저지하고 파업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대열을 뜻하는 ‘피켓라인’에 동참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과의 간이 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UAW 노동자들의 옆에 서서 연대를 표명하고, 그들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요구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에 들어 현직 미국 대통령이 노조의 피켓라인에 동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장-피에르 대변인은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지난 22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피켓라인에 동참하기 위해 미시간으로 가겠다. 그리고 자신들이 창출에 일조한 가치의 공정한 몫을 얻고자 싸우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남성 및 여성 (조합원들)과 연대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현직 대통령이 진행 중인 파업 현장을 방문해 시위에 동참한 전례는 미국사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이 대통령사와 노동사 연구자들의 설명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에서도 일반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노조의 파업 현장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대통령은 소송까지 갈 수 있는 협상 양 당사자 중 한쪽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재임 중 노사 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자제했다는 점에서 이번 일정은 이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열렬한 ‘친 노조’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년 재임)와 33대 해리 트루먼(1945∼1953년 재임) 임기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통신은 소개했다. 역시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출신으로 친 노조 성향이던 39대 지미 카터(1977∼1981년 재임) 집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 재임) 전 대통령이 1902년 역사적인 ‘석탄 파업’ 때 탄광 운영자들과 함께 노조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한 적은 있었는데 그것도 분쟁 해결을 위해 미국 현직 대통령이 노조를 포용한 드문 사례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AP통신 인터뷰에서 에릭 루미스 로드 아일랜드대 교수는 “이는 분명히 전례가 없다”고 단언했다. 루미스 교수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피켓라인으로 걸어 들어간 적이 없다”며 “대통령들은 역사적으로 파업에 직접 참가하길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재자로 간주했고, 파업이나 노동자 측 행동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자기 역할로 보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당선 전인 2019년 캔자스시티에서 UAW의 피켓 라인에 동참한 적이 있다.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전례 없는 행보로 친 노조 성향을 보인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내년 11월 대선에서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권 지지율에 악재가 되고 있는 대규모 파업의 조기 종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정치적 성향상 민주당 텃밭격인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UAW는 지난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는 아직 지지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UAW 파업 기간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의 개별 요구 사항에 대한 지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지만 3대 자동차 메이커들이 노조에 충분한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파업 현장 방문은 공화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하루 앞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받는 요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7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방문해 자동차 노동자들을 위한 것으로 알려진 집회에서 연설하며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표심을 공략할 계획이다.
결국 서로 정치적 ‘숙적’ 관계인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3대 자동차업체 노동자 15만명이 가입한 UAW를 상대로 구애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러 노조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UAW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 전기차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지지를 보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