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가 수송관 폭파” 주장, 흑해 곡물 수출 차단 빌미 우려
“러시아산 비료 원료인 암모니아를 우크라이나로 운송하는 수송관이 우크라이나 공작원에 의해 폭파됐다”고 러시아가 7일(현지시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댐 폭파로 인한 홍수 피해가 수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수송관 폭파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전쟁이 끝없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 수송관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동이 중단됐는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에 협조하는 대가로 암모니아 수송관을 재가동시켜 달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수송관 폭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방해 빌미로 작용해 전 세계적 식량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AP통신,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의 수송관이 5일 저녁 폭파됐다고 주장했다. 폭발로 민간인들이 부상을 입었다. 수송관은 2,500㎞ 길이로, 러시아 사마라주 톨리아티에서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를 잇는다. 러시아가 전 세계로 암모니아를 수출할 때 쓰던 통로다.
수송관 파괴 시점이 공교롭다. 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과 러시아가 ‘흑해 곡물협정 연장’ 협상을 앞둔 가운데 발생했다. 협상의 골자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선이 흑해를 이용할 때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협정이 체결됐지만, 러시아는 “러시아산 곡물·비료 수출과 관련한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며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해왔다.
러시아는 수송관 폭파를 협상 안건으로 들이밀며 “우크라이나의 흑해 이용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밀, 옥수수 등의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라는 점을 이용해 ‘세계인의 식량’을 인질로 잡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호우카댐 붕괴 피해는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폭파 사흘째인 8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침수 지역에서 약 6,000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피해가 계속 커질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피해 현장을 찾았다. 그는 7일 독일 빌트 인터뷰에서 “침수된 집 지붕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시체가 물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사망자 규모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피해 범위가 워낙 방대해 국제기구 구조 손길도 닿기 어렵다.
홍수로 지뢰가 대거 유실된 것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기름 등 각종 화학물질이 유출되면서 식수도 부족하다.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자포리자 원전 냉각수 수원으로 쓰는 저수지 수위도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댐 폭파를 ‘러시아의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에 나섰다. 다만 댐이 러시아 관할지라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