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폭염에 보호시설 미비…집있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 200배
때 이른 폭염이 미국 곳곳을 덮치면서 더위 피할 곳 없는 노숙인이 받는 고통이 가중됐다고 AP 통신이 20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노숙인 밀집 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노숙인이 최고 섭씨 37도를 넘어가는 더위에 시달렸다.
이들은 캔버스 천으로 만든 임시 텐트에 머물며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앞서 6월 초 피닉스의 최고 온도는 45.5도까지 오른 바 있다.
한 노숙인은 "여름에는 밤에 경찰에 쫓기지 않으면서 잠들 수 있을 만큼 시원한 곳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미국에서는 폭염으로 숨지는 사람이 허리케인과 홍수, 토네이도 등으로 인한 사상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데, 특히 무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취약계층 노숙인 비중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피닉스가 속한 마리코파 카운티에서 폭염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 사망한 339명 중 노숙인이 최소 130명에 달했다.
크리스티 에비 워싱턴대 교수는 "130명의 노숙인이 (폭염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다면 그건 대형 재난사고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전역에서 해마다 무더위 영향으로 목숨을 잃는 1천500명 중 절반이 노숙인으로 추정된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기후학자 데이비드 혼둘라는 냉방시설의 보호를 못 받는 노숙인은 집이 있는 일반인보다 폭염 때문에 사망할 가능성이 200배 더 높다고 우려했다.
실제로는 통계 뒤에 숨겨진 사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과 단절된 노숙인 특성상 사망이 뒤늦게 발견되거나 묻히는 경우가 많고,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돼도 무더위와 인과성이 규명되지 않은 채 변사 처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폭염이 찾아오는 시기가 더 이르고 그 강도는 더 올라가면서 각지 거리에 나앉은 노숙인의 고통이 더 커진 상황이다.
지난 주말 최고 기온 30도를 기록했던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최고 기온은 이날 37도까지 올라갔고, 최고 기온이 21도를 넘지 않았던 일리노이주 시카고도 37도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미국을 휩쓴 때 이른 무더위는 거대한 열돔(heat dome)이 형성된 탓이다. 열돔은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가마솥과 같은 더위가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당국은 노숙인을 폭염에서 보호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피닉스 당국은 빈 건물을 200명 수용이 가능한 쉼터로 개조했고, 라스베이거스는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노숙인에게 생수를 제공했다. 보스턴은 나무를 심는 등 그늘을 확보하고 폭염 기간 냉방 시설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