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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발길 뜸해진‘청춘’고을에 오색 들꽃 만발

미국뉴스 | 기획·특집 | 2021-07-09 17: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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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발길 뜸해진‘청춘’고을에 오색 들꽃 만발
파로호 상류 양구꽃섬에 붓꽃과 꽃양귀비, 뒤늦은 유채꽃이 만발했다. 쓰레기장으로 변해 가던 양구 서천변 습지를 정비한 곳이다.

 

강원도 최전방 오지로 인식되는 지역이지만 양구까지 가는 길은 의외로 수월하다. 춘천역에서 약 45㎞,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2012년 뚫린 배후령터널(5,057m)을 비롯해 춘천에서 7개 터널을 차례로 통과하면 바로 양구 읍내로 접어든다. 배후령은 춘천 동북쪽을 장벽처럼 두르고 있는 오봉산을 넘는 고갯길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멀미가 나도록 돌고 또 돌아 오른다. 고갯마루가 해발 600m에 달하니 경사도 만만치 않다. 비포장길이던 시절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승객이 버스를 밀고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양구에서 외지로 나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이니 눈물의 고갯길이었다. 그러잖아도 외부와 단절된 군인들에겐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터널이 뚫린 후 고갯길은 이제 산길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운전자나 찾는 한적한 도로가 됐다.

 

군인 발길 뜸해진‘청춘’고을에 오색 들꽃 만발
물 빠진 파로호 바닥이 초원으로 변해 있다. 물을 채우면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경이다.

 

 

■쓰레기장이던 습지가 알록달록 꽃밭으로

양구는 대외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독도와 북한 압록강 하구의 마안도, 제주 마라도, 북한 두만강변의 온성군 유원진(柔遠鎭)을 각각 국토의 동서남북 끝으로 보면 양구가 한반도의 중앙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동경 128도 2분 2.5초와 북위 38도 3분 37.5초로 특정된 한반도 정중앙에는 상징탑(휘모리탑)이 세워졌고, 이 좌표를 포함한 남면은 올해 행정 지명을 아예 ‘국토정중앙면’으로 바꿨다.

이와 함께 내세우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청춘 양구’다. 국내 어느 지역보다 공기가 맑아서 양구에 오면 10년은 젊어진다는 뜻으로 지었다. 실제 양구는 공기 중 산소 농도가 23%가량으로 전국에서 최상위 수준이라 자랑한다. 지역에 공해를 유발하는 공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은 적정 산소 농도를 18~23.5%로 규정하고 있다.

휴전선과 접한 최전방 양구에서 또 다른 의미의 ‘청춘’은 군인이다. 주말이면 외출 나온 장병과 면회 온 가족으로 읍내 식당과 상가가 북적거렸지만,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제한되면서 접경 지역은 더욱 한산해졌다. 그 싱그러운 청춘을 대신해 알록달록 원색의 꽃송이가 여름의 길목을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다.

읍내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하천변에 ‘양구꽃섬’이 있다. 이름처럼 한겨울을 빼고 끊임없이 꽃 단장을 하는 섬이다. 꽃섬으로 변신하기 전까지 이곳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변 습지였다. 김영자 문화관광해설사는 “말이 좋아 습지이지 실제는 쓰레기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주민들이 몰래 갖다 버린 쓰레기가 쌓이고 바람에 날려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강물까지 오염시켰다. 수질 개선과 생태 복원이라는 습지 본래의 기능과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4만㎡ 면적의 습지는 5개 테마정원으로 정비됐다. 테두리에는 샛노란 유채꽃 물결이 일렁거린다. 봄의 전령사처럼 들판을 화사하게 장식했던 유채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양구에선 이제야 한창이다. 그 안쪽에 꽃양귀비가 정열을 뿜고 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하늘거리는 진홍빛 꽃잎이 정신을 빼놓는다. 섬 중앙엔 진보랏빛 붓꽃이 한가득하다. 유채와 꽃양귀비에 한껏 들뜬 마음을 차분히 달랜다. 잘 다듬은 붓끝처럼 생긴 꽃대에서 우아하게 늘어진 꽃잎이 담채수묵화처럼 묵직하면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일부 산책로에 가로수처럼 심은 메타세쿼이아는 아직 가지가 빈약하다.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녹색 터널의 운치를 더하려면 세월이 더 필요할 것이다. 꽃섬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신한다. 여름이 지나면 백일홍, 코스모스, 해바라기와 메밀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겨울이면 억새가 흐드러진다. 습지에서 수상 산책로가 연결돼 있어 꽃밭과 강바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꽃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한반도섬’이다. 국토 정중앙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파로호 상류에 조성한 섬이다. 파로호(破虜湖)는 1944년 5월 화천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6·25전쟁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격파한 곳이라는 의미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지은 이름이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매끄러운 어감과 달리 전쟁의 비극이 짙게 투영된 지명이다.

분단의 상처는 지금까지 이어져 국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곳이 됐지만, 오랜 옛날 이곳은 한반도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한 곳 중의 하나였다. 파로호 수몰 지역인 상무룡리에서 약 10만 년 전후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1980년대 후반 평화의댐 공사를 위해 화천댐 물을 빼낸 사이 지표 발굴 조사가 실시됐다. 그 결과 수입천과 서천이 만나는 지점 15곳에서 구석기 유물이 다량 발견됐다. 강원대와 경희대 연구팀이 건져 낸 유물은 몸돌 석기인 찍개·주먹대패·주먹도끼, 세석기인 좀돌날·새기개·밀개·긁개 등 모두 6,000점이 넘는다. 이 중 일부는 꽃섬 인근 양구선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문명의 간극이 크다. 솔직히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강가에 흔한 돌멩이를 가지런히 늘어 놓은 모습으로만 보인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거나 남달리 눈썰미가 뛰어나다면 그 무심한 돌들 사이에서 구석기인의 숨결을 감지할지도 모르겠다. 전시관 야외에는 함께 발굴된 고인돌도 옮겨 놓았다.

한반도섬도 꽃섬과 마찬가지로 무단 경작으로 인한 부영양화와 쓰레기 불법 투기로 몸살을 앓던 곳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바로 아래에 소형 보를 설치하고 습지를 조성한 후 생태계가 되살아났으니 환경보호와 휴식 공간 확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군인 발길 뜸해진‘청춘’고을에 오색 들꽃 만발
DMZ자생식물원에 핀 부채붓꽃. 뒤편 대암산 다작이 안개에 싸여 있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 DMZ자생식물원

한반도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의 해안면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꽃밭이 있다. 대암산 기슭 해발 600m 지점에 조성된 DMZ자생식물원이다.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고 인위적인 간섭이 제한돼 온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으로 생태의 보고로 변모했다.

국립DMZ자생식물원은 비무장지대에 자생하는 식물과 멸종 위기에 놓인 북방계 식물을 가꾸고 연구하는 곳이다. 인공으로 꾸몄지만 야생화 정원에 가깝다. 습지원, 희귀·특산식물원, 북방계식물전시원, 소나무과원, 워(War)가든, 야생화원 등 모두 8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시각적 화려함을 추구하는 일반 식물원과는 차이가 있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보인다.

방문자센터를 통과하면 ‘워(War)가든’이다. 커다란 화채그릇처럼 움푹 꺼진 모양이어서 일명 ‘펀치볼’로 불리는 해안분지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 워가든은 이 식물원의 역사ㆍ지리적 특성을 단박에 각인시킨다. 영화 소품으로 쓰던 통문과 철책을 입구로 활용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녹슨 종탑이 서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철거한 철조망을 녹여 만든 종을 철탑에 건 설치작품이다. 돌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야생화 정원은 이 땅을 일구며 살았던 주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현재 돌담과 산책로를 따라 초롱꽃, 오랑캐장구채, 눈개승마, 참조팝나무, 부채붓꽃 등이 앙증맞게 피어 있다. 꽃대가 길거나 꽃송이가 풍성한 일부 식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숙여야 그 아름다움이 보인다.

가장 위쪽의 ‘북방계식물전시원’은 13일까지 한정 개방하고 있다. DMZ 일원에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과 북한, 러시아 등지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조성한 정원이다. 두메양귀비ㆍ넌출월귤ㆍ백산차 등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풀과 나무가 있는데, 현재는 백두산떡쑥ㆍ애기기린초ㆍ하늘매발톱ㆍ만병초 등이 꽃을 피웠다.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간 자리에 뿌리내린 화합의 꽃밭이다.

<양구=글·사진 최흥수 기자>

군인 발길 뜸해진‘청춘’고을에 오색 들꽃 만발
파로호 중간에 조성한 양구 한반도섬. 평시에는 한반도 지형 외에 호수에 잠겨 있지만, 현재 축대 보강 공사를 위해 물을 빼 호수 바닥이 초원으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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