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선거는 양당 전당대회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가 지난달 27일 마무리되면서 11월 3일 대선까지 남은 두 달여간 마지막 캠페인에 돌입했다. 한때 두자리수까지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가 전당대회 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를 3%포인트까지 따라붙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선거 결과는 안갯속 형국이다. 현재 대선전은 ‘바이든’ 대 ‘트럼프’라기보다 ‘트럼프’ 대 ‘반 트럼프’ 진영 간의 싸움이다. 바이든은 오로지 트럼프 몰아내기에 캠페인의 초점을 맞췄다. 미국이 처한 ’어둠과 혼돈‘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선 ’어둠‘의 주범인 트럼프를 몰아내야 한다며 반 트럼프 세력을 결집하는 ‘빅 텐트’가 주 전략이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메이드 인 차이나” “과격 시위대의 배후”라고 맹공하면서 미국 이익을 수호하고 약탈과 파괴에 대항하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시위 확산-트럼프 지지세력 결집
트럼프 캠페인의 주 전략은 ‘법과 질서’다. 트럼프 캠프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피투성이가 된 시카고 거리와 무정부 상태의 포틀랜드 시가지, 미네아폴리스의 불타는 경찰서를 보여주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종시위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전당대회 기간 위스콘신에서 백인 경찰 총격에 비무장 흑인이 하반신 불수가 되면서 시위가 격화됐고,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백인 소년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해 흑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폭력적인 시위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극렬 좌파 사회주의자들에게 포위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바이든의 미국은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폭력적인 침략자들로부터 여러분을 지키겠다”고 연설했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에서 눈에 띈 장면은 지난 6월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위대를 향해 돌격소총과 권총을 겨눴던 백인 변호사 부부였다. 그들은 “우리가 물러설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도널드 트럼프‘도 그렇다”고 말했고 이는 메가톤급의 극우파 유투버들을 통해 경합주의 수백만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전달됐다. 반트럼프 캠페인에 앞장 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대선 막판 백인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나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장면이 연상된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도 이른바 ‘샤이 트럼프’의 결집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경합주로 번지는 코로나19
2020 미 대선 판의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 상황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이 나온 지 꼭 6개월 되는 날 전당대회가 열렸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60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18만명이 사망했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은 트럼프가 마스크만 썼어도 방역의 절반은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리더십 덕분에 수백만 명이 사망했을 것을 단지 18만명에 그쳤다는 억지 주장을 펴며 책임 논란을 피해왔다.
그러나 상황은 심각했다.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이 코로나 사망자수의 25%를 차지했고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의료시설과 방역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코로나 대응과 관련해 완전하고 완벽한 실패라는 점은 트럼프 지지층이나 반대파나 논란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코로나19는 빠른 속도로 미국 대륙을 뒤덮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측을 불안하고 초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트럼프 지지층(경합주)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 코로나19는 3~5월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권, 6~7월엔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로 번졌다. 3차 확산이라 할 수 있는 8월 들어서는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등 중서부로 확산 중이다. 남부와 중서부는 트럼프의 골수 지지층이 자리잡고 있다. 마음이 급해진 트럼프 캠프는 10월 바이러스 백신을 내놓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백악관 관리들도 선거전 도중에 백신이 나오고, 개발과 공급이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 말한다.
■선거결과 불복 가능성
4년 전 미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백악관은 조시 부시 전 대통령 및 공화당 전직 각료들과 비밀리에 협의를 가졌다.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해도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할 경우를 대비한 대책회의다. 미국의 선거 결과는 개표 결과보다는 패자의 승복 선언으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조시 부시 대통령과 맞붙었던 민주당 앨 고어 후보의 승복선언이 대표적이다. 패자가 승복하지 않을 경우 모든 표를 검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에, 초당적으로 트럼프의 불복 상황에 대비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트럼프가 대통령의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당파 정치집단 사이에서 트럼프가 불복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여러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 조지타운 법대의 리사 부룩스 교수는 “법은 본질적으로 그것을 무시하려는 대통령에게는 거의 무력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우편투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를 두고 “불복할 ‘밑판’을 깔고 있다”고 표현한다. 선거 불복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편투표는 미 정치사에서 가장 큰 사기”라며 “민주당이 선거를 훔치려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선거관리는 전적으로 주지사 권한이다. 지난 대선 때는 경합주 7곳의 주지사가 모두 공화당 소속이었으나 2018년 중간선거를 거치며 현재는 오하이오, 플로리다를 제외하면 모두 민주당 주지사로 바뀌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믿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상은 부정선거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우편투표로는 트럼프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지지자 중 우편투표 의향이 있는 사람은 11%인 반면 바이든 지지자 가운데 우편투표 의향이 있는 사람은 47%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로 선거당일 개표 결과와 우편투표가 반영된 최종결과가 다를 가능성이 크며, 트럼프의 선거불복 가능성도 짙어진다. 때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힐러리 클린턴 전 대통령 후보는 코로나19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우편투표가 아니라 직접투표를 할 것을 강력하게 독려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바이든이 압승해 트럼프의 불복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동시에 트럼프의 불복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법적, 정치적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민주당 의회가 우편투표 관련 청문회를 개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중국·대북 외교 전망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외교문제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말처럼 경제가 승패를 결정한다. 이번 선거에서 ‘중국’은 복합적이다. 지금 미국에서 ‘중국’이란 단어 속엔 코로나19, 경제, 외교, 안보가 다 들어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왔다는 인식은 대중적이다. 반중국 정서가 팽배하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훔쳐갔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외교나 안보에서 ‘중국’은 미국의 경쟁적 대척점이라는 점도 초당적이다. 미국에서 중국은 아시아를 대변한다. 반중국은 반아시안이고 그것은 곧 반한, 반이민으로 연결된다. 코로나 사태로 한인들도 백인들로부터 빈번하게 공격당한 케이스가 이를 방증한다. 트럼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을 미국에 완전히 굴복시켜야 한다는 난폭한 패권을 추구한다. 반면 바이든의 외교안보 참모진은 전반적으로 실용주의자로서 4차산업과 환태평양 경제공동체 등을 놓고 중국과 ‘전략적 경쟁 속 협력’ 노선을 추구한다.
대북 문제에서 바이든 당선시 ‘오바마2기’ ‘전략적 인내’가 되리라는 전망은 경솔하다.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당시 바이든은 여당 쪽 상원외교위원장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전략을 평하기에 앞서 당시 우리 정부의 역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와 달리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에서는 우리 정부의 역할 비중이 컸다. 바이든의 대북 전략 예상은 ‘클린턴-올브라이트-바이든’과 김대중 정부 시기의 대북 관계를 돌이켜 보는 것이 맞다.
<김동석 미국한인유권자연대 대표 >